2021-03-07
저녁 내내 애인이 구토를 했다. 점심에 먹은 회정식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안압으로 인해 붉어진 눈으로 생일인데 미안하다 말하는 애인을 보며 나는 그깟 생일이 뭐라고 들떠있었나 괴로워졌다.
누워 자다 화장실로 달려가고 앉아 졸다가 화장실로 달려가고 가만히 있다가 화장실로 달려가는 애인을 보고 있으면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응급실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지만 애인은 응급실 까지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것이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아픈 것보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애인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베아제*와 죽을 사 왔다. 애인에게 베아제를 두 알 먹였다. 애인은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약도 다 토했다. 다 토해놓고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구토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고이다 못해 흐르고 있었다. 아무 소용없는 약을 사와 놓고는 고맙단 소리를 들은 내가 미워졌다.
애인의 손과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애인은 손을 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바늘을 찾았지만 없었다. 편의점에 가 베아제와 실 바늘 세트를 샀다. 애인은 내게 손을 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지 못한다고 말했다. 혹시나 애인을 더 크게 다치게 할까 두려웠다. 애인은 왼손 엄지 손가락을 실로 감았다. 창백해지는 손가락에 바늘을 찔렀다. 검붉은 피가 나왔다. 금세 왼손이 따뜻해졌다. 오른손도 따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애인은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내가 해보기로 했다. 애인이 오른손 엄지를 실로 감았다. 바늘로 애인 엄지를 찔렀다. 피가 나지 않았다. 다시 조금 더 힘을 주어 찔렀다. 피가 나지 않았다. 바늘을 가져다 놓고 천천히 찔러 넣었다. 피가 나지 않았다. 애인이 자신이 해보겠다고 했다. 바늘을 줬다. 애인이 찔렀다. 피가 나지 않았다. 거의 다 쓴 치약을 짜내듯 애인의 엄지에 고인 피를 밀어냈다. 세 방향에서 검은 피가 천천히 방울졌다. 오른 손도 금세 따뜻해졌다.
자고 일어나니 애인은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침 겸 점심으로 죽을 먹이고 베아제를 먹였다. 나는 어젯밤에 함께 먹으려고 사놓은 샤부샤부와 딸기 케이크를 혼자 먹었다. 하얗게 변했던 머릿속이 애인의 검은 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머릿속을 확대하면 검은 피로 생일이 뭐 어쩌라는 거야 라고 깜지로 쓰여 있을 것 같았다.
보호자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픈 것에 프로니까. 그러면 애인이 이런 마음이 되려나. 최선은 모두가 아프지 않은 것이겠지. 집에 가기 전 애인이 내일 아침으로 먹을 죽을 배달시킨다. 아침에 죽을 먹을 즈음이 되면 아팠던 일도 먼 과거가 되어 전생의 일처럼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이제 생일도 끝났다. 그래. 일상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은 중요하다. 일상에서 나도 애인도 여러분도 모두 아프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메리 일상.
*소화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