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운동을 가지 않았다. 운동 대신 그간 밀어둔 설거지와 안방 청소를 했다. 글을 쓰고 실패한 감정이 들었다. 그럴 때 청소를 하면 좋아진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어 청소를 했다.
널브러져 있는 빨래를 침대 위에 올려둔다. 그간 시켜먹은 배달 음식의 빈 용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치우려다 보니 귀가 허전하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켰다. 유튜브로 청소할 때 좋은 팝송을 검색해 틀었다. CF나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신나지 않았다. 물건을 하나 치울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은 문장과 마음에 들지 않은 거리감이 생각났다. 주저앉아 조금 울었다. 눈물이 멈추자 그대로 대자로 누워버렸다. 100L 쓰레기봉투의 반을 채웠는데도 치운 것 같지 않았다. 오른쪽엔 과자 봉지가 왼쪽에는 수건이 같이 누워있다. 아 쓰레기가 된 기분이야.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청소를 하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글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상태인지 자각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 갈림길에 있다. 치우는 것을 포기하고 완전한 쓰레기가 될 것인가. 대충이라도 치워 불완전한 쓰레기가 될 것인가. 글도 사랑도 불완전한 것들이 하는 거다. 일어난다. 쓰레기의 마음은 쓰레기가 안다. 정돈된 쓰레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뒤엉키고 싶지는 않지 않을까. 빨래와 쓰레기 중 정리할 순서를 정하기로 한다. 하나라도 일단 치우면 마음이 좋아질 것 같다. 글도 그렇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다 보면 글에서 남는 것은 넋두리뿐이겠지. 수건부터 개기로 한다. 매번 샤워를 하고 물을 뚝뚝 흘리며 안방까지 수건을 가지러 왔었다. 수건함에 수건을 넣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렵다고 그랬던 걸까. 가끔 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을 때가 있다. 망했다는 감정도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다. 그냥 방치해둔다면 별 것 아닌 일이 아니게 되겠지. 빨아놓고 애써 다시 빨아야 하는 사태가 생길 테니까. 막상 시작하니 금방이다. 수건함에 빨래를 넣으며 여행기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여행지.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옷을 행거에 대충 걸어두며 여행기를 처음 써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댄다. 양말과 팬티를 돌돌 말며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을 했다. 이불을 정리하며 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 누웠다. 눕고 나니 그냥 일단 끝까지 쓰고 나서 생각해봐야겠다 싶어 진다. 졸리다. 잘까. 원래 목적도 어느 정도 완수한 것 같은데. 아직 완전한 쓰레기에 저울이 많이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뺨을 때린다. 얼얼한 볼을 만지며 일어난다. 100L 쓰레기봉투를 마저 채운다. 이제 100L 쓰레기봉투는 미화원 선생님들의 허리를 위해 나오지 않는다던데.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은 것 같아 죄송스럽다. 혼자 힘들면 혼자 견디면 그만이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면 그것은 큰 문제다. 들어본다. 가볍다. 배달용기가 대부분이라 부피만 컸다. 조금 마음이 놓인다. 다음부터는 작은 쓰레기봉투로 충분한 삶을 살게요. 공모전을 위해 글을 묶어볼까 싶었는데 쓰레기봉투처럼 부피만 차지하고 무게감은 없을까 봐 두렵다. 설거지를 시작한다. 뭐 두렵다고 해서 글이 혼자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가볍게 들고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괜한 걱정이다. 세제의 거품이 그간 먹은 음식의 기억을 잘도 지운다.
거실과 작은방의 청소가 남았는데 다음 고민을 위해 놔뒀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청소가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서 그렇다. 진짜로 귀찮아서가 아니다. 출근 전에 쓰레기봉투를 버릴 생각 하니 벌써 몸이 나른해진다. 그건 좀 귀찮다. 믿자. 믿음이 시작이다. 귀찮지 않다는 것도 믿고, 반성했으니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했을 거라 믿자. 사소한 것부터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지. 발전한 나는 쓰레기를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