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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16. 2021

돌아올 수 없는 일상

 3차 항암이 끝나고 호중구 수치도 정상이 되어 퇴원을 하기로 했다. 이번 항암은 예상대로 된 것이 없었다. 열이 잡히지 않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좋은 사람들은 죽었다. 지쳤다. 마지막 항암 전 휴식기 동안에는 여행도, 만남도 피하기로 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 오자마자 누웠다. 그냥 형광등만 바라봤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않았는데, 유난히 힘들었던 이번 항암 사이클이 떠올랐다. 예상을 해서 좋은 사람들이 죽은 것 같다고 자책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면 오만했다고 자책했다. 친한 친구들에게 고민을 풀어놓으니 내게 책임이 없다고 했다. 너는 펠레가 아니라고 했다.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책임이 없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자책하는 이유는 그냥 죽은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문을 열더니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묻는다. 없다고 말하자 비트와 요구르트를 섞은 음료를 가져왔다. 어디서 들었는데 비트가 혈액에 좋다고 했다고 한다. 피가 맑아지는 느낌은 뭔지 모르겠지만 선홍빛의 음료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문을 열더니 초코파이를 던져놓는다. 군대에서 지겹게 먹었다고 말하려는데 바로 문을 닫았다.      


 집이 나로 인해 일상이 일그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이물질에 가깝게 느껴졌다.     


 얼마 누워 있지도 않았는데 종아리가 간지러웠다. 모기에게 물려 있었다. 모기는 편식하지 않는구나. 혹시나 모기가 맛이 없다고 뱉은 핏자국이 있을까 사방을 둘러봤다. 깨끗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부푼 자국이 내가 이상할 것 없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증표 같았다.     


 일어나 저녁으로 라면을 끓였다. 엄마가 끓여준다는 것을 한사코 내가 끓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전자레인지로 끓인 라면이 아니라 가스레인지로 내가 끓인 라면. 맛있었다. 사소한 것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나 이내 슬퍼졌다. 이렇게까지 재밌을 일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같은 자세로 눕거나 책을 읽거나 밥을 먹어도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슬픔은 사소한 것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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