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 관계자와 만난 적이 있었다. 투병기를 보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우리는 만나 라멘을 먹었다. 라멘이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그는 개인 에세이집을 내보거나 젊은 환자들의 글을 묶어서 내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도 맛있는 것을 먹고 생긴 용기로 짧은 글을 보내기 약속하고 헤어졌다.
아무리 써도 병원 생활이 진행될 때처럼 유쾌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것은 즐거운 표정으로 투병하는 이십 대 초반의 환자였던 것 같았다. 처음 써서 보낸 글에 감상평은 냉정했다. 평범하다고 했다. 그 후로 몇 번인가 더 글을 써봤지만 어둡기만 했다. 그때 알았다. 내 진짜 투병은 병원 생활 이후가 시작이었다는 것을. 글을 몇 편 더 보냈던가, 보내지 않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하며 끝났다.
아쉽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아쉽지 않았다. 덕분에 진짜 내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던 것이었다.
요즘 주변에서 출간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는 사람이 늘었다. 글이 어느 정도 모이긴 했다. 욕심이 있는 척 그래야죠 하고 웃어 보였다. 속으로는 평범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출간을 준비하거나 갓 출간을 하신 작가들의 두근거림을 읽는다. 부럽진 않다. 그냥 멋있다. 부러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먼 이야기다. 흐지부지 끝냈던 것이 내가 도망가서 그랬던 것 같다. 쓰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나는 이제 걷기 시작했다. 초라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멀리 볼 여유가 없다. 발끝만 보고 걷기에도 벅차다. 평가를 걱정하긴 무슨.
글을 모으다 보면 책은 못 되어도 나라도 구체적이게 되지 않을까. 수행자가 된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