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작업실에 갔다. 따릉이를 타고 갈까 하다가 천천히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보행보조기를 끄는 노인과 유모차를 끄는 부부를 지나쳤고 뛰어가는 다섯 살 남짓의 아이와 소리치며 쫓아가는 아이 엄마를 잠시 멈춰 서서 봤다. 갑자기 달려오는 자전거를 피했다. 작은 목소리로 욕을 했다. 자전거는 욕이 닿기도 전에 멀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큰 개가 내 발등에 앞 발을 올렸다. 당황해하는 주인에게 웃어 보였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개는 마스크가 아니라 입마개였지만. 분명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마스크 덕분에 부조리극 무대 한가운데를 걸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낚시 의자를 펼쳤다. 낚시 의자에 반쯤 누워 에세이를 몇 개 읽었다. 전화가 왔다. 친구였다. 문예지 공모전이 이 주 정도 남았다고 시는 썼냐는 전화였다. 안 썼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마스크를 벗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마스크는 비말뿐만 아니라 헛된 말도 차단시켜주는구나. 그냥저냥 쓰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준비 잘하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에세이를 덮고 시를 몇 편 읽었다. 이제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벗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시를 조금 쓰려다가 그냥 긴 글을 쓰기로 했다. 웃겼다. 20살 시절, 소설 창작 수업에 긴 글을 쓸 염두가 나지 않아 마지막까지 소설을 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시체에 내 이름을 적어 놓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으셨었다. 결국 하룻밤만에 써서 내고 합평 시간에 대차게 까였었지. 그때 다신 긴 글은 쓰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지금은 시는 안 쓰고 긴 글을 쓰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니 사람 일이란 모른다.
글에 비말처럼 잡다한 생각이 묻을 것 같다. 마스크를 다시 썼다. 최근에 우울증이 심해졌었다. 나는 이래야 해.라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 원인인 것 같다. 그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는 일일 뿐인데. 부조리극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상연되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조차 마스크를 쓸 필요가 있을까. 마스크를 다시 벗었다. 시도, 긴 글도 뭐가 중요한가. 그냥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나는 틀리지 않았어. 중얼거렸다. 우울이 사라졌다 말하긴 어렵지만 용기가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