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물 권하는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집배원이 난감한 표정을 하며 노인의 친절을 거절하고 있을 것이다. 말끝을 늘리며 발음해서일까. 매번 집도 잠도 뚫고 들어오는 노인의 친절. 매번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 창문을 연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집배원을 향해 노인은 자신의 집에 온 것은 없냐고 묻는다. 어르신 집에 온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오토바이를 올라타는데 동작에 끊김이 없다. 숙련된 말과 동작은 어느 경지를 넘어서면 쉬워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무시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채 대응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나였다면 노인에게 한참을 붙들려 있었겠지.
노인은 들어가지도 않고 현관문 난간에 쭈그려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 기다리는 걸까. 무엇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기에 골목 사람들이 모두 노인의 기다림을 알아야 하는 걸까. 골목에 살고 있는 모두가 함께 기다리게 만드는 그것이 편지긴 한 걸까.
우수에 찬 노인의 표정을 보니 화를 낼 수 없다. 다시 자야지. 문득 노인이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편지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말투처럼 발을 끌며 걸어 들어가는 노인이 집도 잠도 마음도 뚫고 들어온다. 노인이 집 앞보다 멀리 가는 것을 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