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의 강에서
의자에 앉기 전까지 쓰고자 했던 것들이 있었다. 분명 정리된 생각을 옮겨 적기만 하면 되었는데 커서는 제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다.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 한글 창을 내리고 인터넷을 켰다.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다 흘린 지폐를 찾는 것처럼 유머부터 뉴스까지 마구잡이로 읽어봤지만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말고 주워 쓸 사람도 없을 텐데 어디로 갔을까.
일어나 의자를 봤다. 의자가 불편해졌다던가 낡아 주인도 못 알아본다던가 핑곗거리를 찾아봤지만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들과 읽다 만 책들이 부서진 배의 조각같이 표류하고 있었다. 옷마다 벗었던 날의 기분과 계절이 묻어 있고 책에는 읽지 않은 기분과 계절이 묶여있었다. 과거와 미래가 뒤엉켜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득하다. 망각의 강이 현실에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강을 건너며 온갖 것들을 떠올리고 추측하다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일은 추측하고 떠올리기만 남는다. 나도 옷이나 책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누가 나를 읽어내기를 기다리며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뱃사공은 어디로 갔을까. 뱃사공 몰래 어떻게 출항한 것일까. 사실 뱃사공은 내가 아니었을까.
다시 의자에 앉는다. 쓰고자 했던 것들은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다. 방부터 치울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쓰고자 했던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노 젓기를 멈추면 안 된다. 쓰고자 했던 것들 잊은 것은 메모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노를 저어 건너가야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이라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