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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22. 2024

환자가 환자에게 직접 화를 내는 것은 보지 못했다.

 불이 꺼지고 잠을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각선 자리에 누워 있는 노인은 왜 밤만 되는 기침을 하는 것일까. 기침에 맞추어 한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잠이 기침에 걸려 고꾸라졌나 보다. 건너편 침대에서 한숨을 쉰 것 같은 중년의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병실을 나간다. 분명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는 화가 가득하지만 링거대를 끌며 나가는 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데스크에서 간호사에게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린다. 기침의 간격이 더욱 짧아진다. 하소연하는 소리도 고꾸라져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환자가 환자에게 직접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니 찝찝할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링거대를 끄는 발걸음 소리가 건너편 침대에서 멈춘다. 간호사가 들어와 노인에게 약을 달아주는 소리가 들린다. 잠깐일 것이다. 매일 그랬다. 기침이 잠시 멈춘 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자야 한다. 잠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양을 세고 있을 남자를 생각한다. 나도 그랬지. 중요한 것은 양을 세는 것보다 눈에 힘을 푸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잠들겠다는 마음은 눈가에 주름이 질 정도로 눈을 꼭 감게 다. 그 주름은 잠까지 가게 되는 난해한 미로가 된다. 길을 잃기 전에 요령을 가르쳐 주고 싶지만  기력이 없다. 낮에 *암포테라신 b 때문에 생긴 오심을 잠재우기 위해 먹은 *아티반이 잠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끌어와 써버렸기 때문이다. 기력을 주고 그 지독한 오심을 잊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했다. 밤은 깊어가고 영원한 잠과 평범한 잠을 필사적으로 구별하며 밀어내고 당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든 척한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생각을 붙잡고 있다 보면 침대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그래도 눈은 뜨면 안 된다. 눈꺼풀이 들리는 소리가 들리면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가 귀신같이 알고 일어날 것이다.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걱정할 것이다.




*암포테라신 b : 혈액암 환자에게 위협적인 것은 암세포뿐만이 아니라 없어진 면역력에도 있다. 일반인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진균(곰팡이균)도 혈액암 환자에게는 엄청난 위협이다. 진균의 무서운 점은 빠른 진행에 있는데 밥도 잘 먹고 잘 쉬고 있다가도 진균에 갑자기 감염되어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사망하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암포테라신 b는 진균 감염 치료제이다. 부작용이 상당해 환자들이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약이기도 하다. 현재는 다른 약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보험이 되는 효과가 좋은 항진균제는 암포테라신 b 뿐이라 선택지가 없었다.


*아티반 정 : 항불안제로 유명한 마약성 진정제. 오심, 구토에도 효과가 있다. 부작용으로 졸린다. 경험상 구토나 오심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기보다 잠 덕분에 구토나 오심에 효과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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