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녹원에 왔다. 사방에 대나무뿐이다. 웃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대나무 앞에서 두 손으로 꽃받침을 한 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나무 꽃은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들다고 한다. 웃고 떠드는 저 사람들도 평생에 두 번 있기는 어려운 인연이겠지.
대나무는 꽃이 피면 죽는다고 한다.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라는 말이 생각난다. 부모라는 어려운 인연도 그때 만나니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이 꽃이 피는 순간이겠다.
땅을 보며 걸었다. 풍경을 외면하면 걸음이 빨라진다. 어디를 가도 아빠는 항상 앞서 걸었다. 놀이공원에서도 동물원에서도 계곡에서도 앞서 들어갔고 앞서 나왔다. 가족 중 누구도 천천히 가라고 하지 못했다. 헐떡이며 묵묵히 뒤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배운 노하우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아빠 번호다. 전화는 받지 않고 뒤로 돌아 걸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줄을 섰다. 줄의 시작점을 보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표지판이 따로 보이지 않았는데 포토존인 걸까. 어느샌가 아빠 휴대폰이 카메라 앱이 켜진 채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다정한 척 엄마 어깨 위에 손을 올린 포즈가 불편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카메라 버튼을 누르며 사진이 찍히는 찰나의 순간을 생각했다. 사진은 잃어버릴 수라도 있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도 사진을 찍으라고 하길래 한사코 거절했다. 우리 다음 차례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찍히는 사람들에게 포즈에 대한 주문이 많았다. 괜히 비교되는 마음에 다시 땅을 보고 앞서 걸었다.
멀어지니 마음이 편하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아빠 번호다. 전화를 받지 않고 뒤로 돌아 걸었다. 다시 엄마와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줄을 섰다. 시작점은 보지 않아도 포토존일 것이다. 다시 사진 찍고 땅 보며 앞서 걸었다.
전화가 오고 다시 사진 찍고 땅 보며 앞서 걷고
전화가 오고 다시 사진 찍고 땅 보며 앞서 걷고
고문법 중에 대나무 고문법이라는 것이 있다. 죽순 위에 사지 결박한 사람을 눕혀 놓는 것이 고문법의 전부다. 다만 생장이 빠른 대나무가 아무렇지 않게 누운 사람을 뚫고 자랄 뿐이다. 짜증이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자리는 이미 서러움과 외로움이 쌍으로 뚫고 지나간 자리다. 앞서 걷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악연도 인연이라고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