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여행기 ( 11 )
담양으로 향하는 차창 밖 풍경은 따분했다. 이제 갓 한글을 뗀 아이처럼 엄마는 식물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감탄했다. 소리를 따라 밖을 보면 나무와 꽃 그리고 논밭이 전부였다.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감탄하는 걸까. 차이를 고민하던 중 김춘수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내게는 하나의 가벼운 몸짓에 불과한 것들이, 이름을 부르는 엄마에게는 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깨달은 기념으로 엄마가 부르는 이름을 따라 중얼거리며 밖을 봤다. 동명이인이 많은가? 혹은 내 발음이 이상했나? 온갖 것들이 격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도저히 정신 사나워서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엄마는 무얼 보고 있는 걸까.
병원이 가까워지자, 아빠는 친척 형을 불렀다. 작은 아빠가 좋아하는 담배와 간식이 무엇인지 묻더니 사서 가자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 눈치껏 지도 앱을 켰다. 마트를 검색하고 친척 형에게 보여주었다. 휴대폰을 본 친척 형은 왔던 길을 한참이나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지쳤는지 졸고 있었다. 옆을 보지도 않고 아빠는 괜찮다고 했다. 지나온 속도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시간을 역주행하는 법은 세계가 왔던 길을 돌아가면 된다고 하던데. 많은 것이 생략되어서 그런 걸까. 룸미러에 비친 아빠 표정이 낯설었다. 표정만 작은 아빠와 함께 지냈을 법한 어린 날로 돌아가 있었다. 징그러워 눈을 감았다.
마트에 도착하자 아빠는 파이류 과자들을 종류별로 카트에 담았다. 친척 형은 너무 많다고 했지만, 아빠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작은 아빠의 별명을 중얼거리며 걸었다. 보이지 않는 어린 날의 작은 아빠가 옆이라도 있는 걸까. 사달라는 데로 다 사줄 작정인지 거침이 없었다.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트를 끌며 따라다녔다. 그러다 봉지 과자 몇 개를 집어넣기도 했다. 어린 날의 내가 멀리서 서성이는 것을 본 것 같다. 나도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줄 사람이 없다.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산 정상에 있었다. 담배 두 보루와 파이류 과자들이 가득한 상자를 들고 병원 면회실로 들어갔다. 얼마 안 돼서 작은 아빠가 보호사와 함께 내려왔다. 흰머리와 흰 환자복이 도인 같아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내게 악수를 권했다. 아빠는 작은 아빠의 손을 잡고 별명이 아니라 이름을 불렀다. 처음이었다. 별명이 아닌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별명보다 이름이 많이 불리던 날은 어디서도 오지 않았다. 작은 아빠보다 작은 아빠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이 불편했다. 혼자 병원 밖으로 나왔다.
병원 밖은 사방이 푸르다. 작은 아빠는 반가운 표정보다 따분함 속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빠도 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았다면 생기가 있었으려나. 괜히 아무 이름이나 중얼거렸다. 나무와 풀에게 이제부터 그게 네 이름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무와 풀은 맹한 모습으로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내가 따분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저 것들에게 내 이름을 말해준 적이 없구나. 내 이름을 중얼거리자, 바람이 불었다. 이름이 바람에 섞여 날아가고 있었다. 통성명해서 좋을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다는 것 같았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면회가 끝났는지 아빠와 엄마 친척 형이 나왔다. 안에선 작은 아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호사와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친척 형은 기왕 담양에 왔으니, 죽녹원이나 가자고 했다. 우리도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로 향했다. 환자복도 병원도 지우고 작은 아빠의 얼굴만 남기기로 우리는 무언의 약속을 한 것처럼, 죽녹원에 가는 동안 우리는 작은 아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