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말에도 양면성이 있을까.
나주 여행기 ( 9 )
호텔 주차장에 도착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멍한 눈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데 뒤가 소란스럽다. 돌아보니 승합차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너덧명이 내리고 있었다. 둘러보니 유난히 승합차가 많은 것 같다. 눈을 비비고 보니 하나같이 소속이 다른 사격부 차량이었다. 아이들이 내리고 문이 닫힌 승합차 옆에도 중학교 사격부라고 쓰여 있다. 코치로 보이는 사람 뒤를 따르는 모습이 병아리 같다. 저 아이들 손에 총이 들려 있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총이라고는 군대에서만 봐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스포츠용 총은 위압감이 덜하지 않을까. 그래도 맞으면 죽겠지. 화기애애한 아이들 소리에 괜히 나쁜 생각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아 진다. 슬쩍 아빠를 본다. 내 비명을 듣고도 동네 사람들은 아빠를 싫어하지 않았지. 사람도 양면적인데 총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엘리베이터가 작은 터라 먼저 기다리고 있던 우리만 먼저 탔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맡긴 짐과 키를 받고 방으로 올라갔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와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가 놓여 있는 트윈 룸.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빠는 왜 방을 두 개로 예약하지 않았냐고 투덜거린다. 시골집에 다녀왔다고 자신이 애로 돌아갔다고 착각하는 걸까. 무시하고 싱글 사이즈 침대에 누웠다. 주차장에서 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화목한 가족이라 생각할까. 아빠가 끝없이 징징거린다. 생각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 굳이 돈을 더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방 하나만 예약했다고, 문의하지 않았지만 문의해 보니 남는 방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까지 곁들여 말했다. 이를 악물고 올라오는 욕 대신 겨우 나온 소리였다.
사람을 죽인 총은 더 이상 양면적일 수 없다. 최소한 죽은 사람에겐 그렇다. 당신이 내게 그렇다.
저녁 식사는 막내고모와 함께 하기로 했다. 막내고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친척형의 사정은 나만 알고 있어 대충 핑계를 지어내 집으로 보냈다. 저녁 식사는 편하지 않았다. 남매는 남매구나. 거의 이십 년 만에 보는데도 이렇게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니. 듣고 싶지 않은 자기 자랑과 남 이야기뿐이었다. 차라리 어릴 적 에피소드나 이야기해 주지. 가만 생각해 보니 남매가 이렇게 닮았는데 할아버지는 얼마나 더 고약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릴 적 에피소드를 듣지 못한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고모는 엄마에게 맞지도 않을 옷을 준다며 함께 집에 가자고 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고모를 택시 태워 보내고 혼자 호텔에 들어갔다. 씻고 침대에 누워 친척형에게 내일 일정을 위해 전화를 했다. 일정 이야기를 하다 엄마와 아빠는 고모네 집에 갔다고 하니 넓은 집으로 이사 간 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고 코웃음 쳤다. 관계가 많이 뒤틀렸구나 생각하다 애초에 고모나 아빠 모두 가족이란 개념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싶어 진다. 나도 가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니 분명 그럴 것이다. 친척형에게 엄마와 아빠가 돌아올 택시를 예약해 줘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에게 전화하자 고모가 부른 콜택시 타고 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도착하고 받은 옷들을 확인하니 역시나 하나도 맞지 않았다. 누가 봐도 둘의 사이즈는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옷을 줄 생각을 했을까. 무슨 엄마가 의류수거함인가. 엄마는 저 옷을 받고 고맙다고 했겠지. 짜증이 났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자기 동생이라고 변호할 아빠를 생각하니 더 화가 났다. 내일 일정을 대충 말하고 퀸 사이즈 침대에 등 돌린 채 누웠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이 없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 이후로 오랜만이다. 매일이 내일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지.
컸다고 어떻게든 오늘을 이해해 보려 드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어색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내가 참 밉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