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시골집에 갔다

나주 여행기 ( 8 )

by 조매영

시골집으로 가는 차 안, 아빠는 멀리 보이는 초등학교를 가리키며 자신이 저길 다녔다고 말했다. 뒤 돌아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하고 바로 앉아 차창 너머 학교를 봤다. 학교는 교문이 없었다. 교문도 없는 저 학교를 어째서 일학년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걸까. 교문보다 더욱 견고한 무엇이 있던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들뜬 목소리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어린 날의 아빠가 묻어 나왔다. 귀를 막을 수는 없어 눈을 감았다.


얼마 가지 않아 시골집에 도착했다. 친척 형은 대문을 두고 빙 둘러 가기 시작했다. 대문의 역할은 무너진 담벼락이 하는 것 같았다. 이걸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시기를 기준으로 해도 이십 년은 넘게 방치된 집. 주저앉은 지붕과 집을 삼킬 것만 같은 무성한 잡초를 보며 우리는 말을 잃었다.


더 이상 볼 것도 할 것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척 형에게 눈짓으로 그만 가자고 하는데, 아빠가 갑자기 바닥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하늘에 던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저러고 놀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에 열린 감을 조준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심은 나무라고 여기서 열린 감이 그렇게 맛있었다며 나뭇가지를 던지는데, 오래되어 삭은 나뭇가지는 꼭 허우적거리는 아이의 팔 같이 맥없이 날아갔다.


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식식거리며 나무에 올라타려고 했다. 괜히 초상을 치를 것 같아, 아빠 보고 비켜 보라 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긴 나무막대를 들었다. 나뭇가지를 치자 감 대신 먼지가 쏟아졌다. 예전엔 어떻게 감을 땄을까. 올라탔을까. 할아버지가 나처럼 막대를 휘두르며 땄을까. 그랬다면 그 앞에선 칠남매가 감을 줍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을까. 오래 묵은 먼지엔 기억이 섞여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서정적인 풍경이 아빠 안에 있을 리 없다. 먼지를 털고 다시 신중하게 휘두르니 감이 몇 개 떨어졌다.


아빠가 옷소매로 닦은 감을 내게 준다. 나는 그것을 받아 살피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식물은 사람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열매는 나무의 기억뭉치가 아닐까. 내게는 단 맛보다 떫은맛이 두드러지게 느껴질 것이다.


차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 지나치는 집마다 누구누구의 집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외면하고 싶어도, 처음 듣는 이름 혹은 별명들이 골목을 채웠을 때를 생각하게 된다. 생각 속에서 아빠가 아니 아이가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다.


아이야 네가 컸을 때 너는 사람 같지 않아 진단다. 아이야 그래도 너는 무럭무럭 자라겠지. 아이야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좋아할 수 없단다. 아이야 그래도 당장의 너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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