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함께 고행은 혼자

나주 여행기 ( 6 )

by 조매영

나주역에 도착하자마자 친척 형에게 전화했다. 나주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사이 아빠는 말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엄마에게 아빠는 어디 갔냐고 묻자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면 될 일이지만 번호를 저장하지 않은 것 때문일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뒷목이 뻣뻣해진다. 엄마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제로 콜라를 두 병 사서 나왔다. 엄마에게 하나 주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병을 통째로 비웠다. 목을 자극하는 탄산과 단맛 그리고 공허한 뒷맛을 느낀다. 무언가 말하고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도 바라지 말자.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제로 콜라를 마시고 나니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아니 충분히 공허해진 것 같다. 멀리 화장실에서 아빠가 나온다.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말도 않고 앞장서서 역을 나간다. 목 안이 따끔했다. 먹은 콜라가 역류하는 건지 욕이 올라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역사 앞 벤치에 앉아 형을 기다렸다. 내게 아빠는 별 다른 이유 없이 너를 그냥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한 형이다. 다른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했으면 멱살을 잡고 싸우지 않았을까. 작은 아빠 때문에 만만치 않게 고생한 형이다. 잠깐이지만 우리 집에서 함께 지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통화할 때마다 어릴 적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매번 자신의 아빠를 원망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그냥 싫어하는 것 같다는 말에 화는커녕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애써 진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는 관계기 때문일 것이다.


친척 형의 차를 타고 나주혁신도시로 향했다. 체크인하기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밥부터 먹기로 했다. 형은 깍듯했다. 어떻게 저렇게 예의를 차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싶다. 아니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생각이 어리다 못해 멍청했던 것 같다. 나도 작은 아빠 앞에서 별 다를 것이 없겠지. 아무리 경험을 공유한다고 해도 내가 형이 되고 형이 내가 될 수는 없는 거겠지. 미워하는 마음은 공유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각자의 아빠를 미워하는 말만 했지 서로의 아빠를 미워하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온전히 혼자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소고기 전문점에 왔다. 형은 자신이 장사하는 곳 인양 당일 도축한 신선한 고기를 파는 곳이라며 기대하라고 했다. 밥을 늦게 먹고 왔다는 형을 빼고 육회 비빔밥을 세 그릇 시켰다. 엄마는 서울에서 느끼지 못한 신선함 이라며 연신 감탄하고 아빠도 입에 맞았는지 별 다른 말없이 그릇을 비워나갔다. 나는 서울에서 먹던 육회비빔밥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형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맛있는 척했다. 여행은 평범한 맛도 특별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이럴까. 역시 나는 지금 여행이 아니라 고행 중이다.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떴다. 계획을 짜고 싶었지만 뭘 알아야 짜지. 즉석으로 다음 스케줄을 정했다. 일단 숙소 리셉션에 짐을 맡기고 할아버지 산소에 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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