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여행기 ( 5 )
블로그 후기처럼 기차의 승차감은 좋지 않았다. 자세를 아무리 바꿔 봐도 딱딱한 의자와 진동은 편해지질 않았다. 넓게라도 앉고 싶어 칸의 제일 앞자리로 예약했는데 기관실에서 나는 소리가 하나도 방음되지 않았다. 먼저 겪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지 않았다면 조금은 덜 불편했을까. 어릴 적에 아빠를 겪지 않고 지금 처음 만났다면 덜 불편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은 그만하기로 하자.
곁눈질하니 아빠가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렇게 변했네 저렇게 변했네 중얼거리고 있다. 지금 어느 역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없는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짜증이 났는데 기차 때문인지 아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주섬주섬 흰 봉투에서 샤인 머스캣, 사과, 오렌지, 과자, 요플레를 순서대로 하나씩 꺼내며 내게 권했다. 엄마 앞에서 맛있다고 했던 것들이다. 언제 내 불편함을 눈치챈 걸까. 내 눈치 보는 실력이 어디서 나왔나 싶었는데 엄마에게 나온 게 확실하다.
탭을 꺼내 오늘의 기분을 메모하려다 말았다. 대신 코미디 영화를 틀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셋과 함께 엄마에게 주었다. 가뜩이나 자리도 불편한데 마음까지 불편한 것은 나 하나면 족하다.
아빠는 더 이상 만들어 낼 추억도 없는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다. 벌레가 들어갈 것이 상상되지 않는다. 내부에 벌레 하나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안다. 벌레 같은 말을 참 쉬지도 않고 잘했지. 금방이라도 저 벌어진 입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올 것 같다. 비열한 사람. 당신보다 크고 나서는 더 이상 내게 벌레를 쏟아내지 못했지. 하지만 나를 먹고 토실토실하게 컸던 벌레가 모두 어디 갔겠나.
영화를 보며 소리 내 웃는 엄마를 툭 쳐서 아빠를 손가락질했다.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엄마가 아빠의 어깨를 툭 치자 몸을 뒤척이더니 입이 다물어졌다. 저렇게 쉽게 다물어질 입이라는 것이 화가 난다. 엄마가 다시 편하게 영화를 보라고 휴대폰을 보는 척한다. 목이 근질거린다. 입을 벌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문다. 나는 끝까지 내 안에 벌레들을 말라 죽일 것이다. 닮아도 닮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