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도 아프면 엄마를 찾을까

나주 여행기 ( 14 )

by 조매영

야생동물은 아픈 내색을 잘 비치지 않는다. 포식자가 언제나 자신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앞에선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언제부턴가 그는 내게 소리치지 않았다. 내가 자기보다 강해졌으니까. 비열한 그의 앞에서 어떻게 아픈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숙소에 도착해 조금은 쉴 줄 알았다. 저녁 식사는 둘째 고모와 함께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약속 시간까지 최소 한 시간은 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빠는 보채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도 있을까.


짐승의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짜증을 냈다. 그래도 아빠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당장 나가야겠다는 그를 보다 그냥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홀로 남은 방. 발산했던 짜증을 그러 모아 굴을 만든다. 입 밖으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몸을 웅크린 채 멀어지는 발소리를 듣는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앓는 소리가 자꾸 새어 나온다. 나 들으라고 나오는 소리겠지. 너는 아픈 사람이다. 괜한 짓 하지 말아라 경고하는 거겠지. 병을 자각시켜 주는 것이, 응급실에서 누워서 본 엄마 표정 같았다.


차를 오래 타서 그런 걸까. 죽녹원을 간 것이 무리가 되었나. 아니면 떡갈비를 너무 급하게 먹어 탈이 났나. 알 수 없다. 이마를 만져본다. 미열이 있다. 몸살일까. 체한 걸까. 몸살이면서 체한 것 같기도 하다. 잔병도 자주 앓으면 원인을 몰라도 아픔으로 병을 감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편의점에 가서 훼스탈과 타이레놀을 사가지고 올라왔다. 약을 먹고 한숨 잤다. 얼마나 잤을까. 이마에 올려진 손에 깼다. 눈을 뜨니 엄마가 나를 보고 있다. 엄마의 표정이 앓는 소리를 대신했다. 야생동물은 제 엄마 앞에서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을까. 고개를 돌리니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 어릴 때 앓던 기억 속에 아빠가 없던 것은 왜곡된 기억이 아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가 검은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봉지에는 즉석 죽과 약이 들어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먹으라며 침대에 반은 던지듯이 놓았다. 방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찬 죽을 먹으며 생각했다. 어릴 적 밤새 앓던 날 아빠는 어디에 있었을까. 보기만 해도 때리고 싶었나. 아픈 애를 때릴 순 없으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걸까. 어설픈 선의가 더욱 경계하게 만든다.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가족 앞에서 아프다. 앓는 소리 가득한 방에서 자지 않아도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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