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주 여행기 ( 16 )

by 조매영

나주역으로 가기 위해 차에 타기 전에 엄마는 내게 십만 원을 주었다. 아빠가 시켰다고, 친척 형에게 기름값이라며 주라고 했다. 자기가 직접 주면 되지 왜 엄마에게 준 걸까. 엄마는 또 왜 내게 주는 거고. 알 수 없었다. 형에게 돈을 주자 거절했다. 억지로 형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내 돈 아니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주역에 도착하자 아빠는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더니 형에게 고생했다며 쥐어주었다. 기름값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었다. 고생은 나도 했는데 왜 내겐 아무것도 주지 않는 걸까.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돈을 주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이 나보다 아빠에게 용돈을 더 자주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라도 그렇다. 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용돈 기입장을 써오는 숙제가 있었다. 들어온 돈의 액수를 적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을 적어야 할 때 한참 동안 고민 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물 가격을 거짓말해서 받음이라고 쓸 수는 없었으니까 그럴듯한 말이 필요했다. 용돈으로 받음이라고 쓰면 되는 걸 그러질 못했다. 방청소 후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용돈으로 받음이라 쓰고 냈다. 거짓말을 하면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방청소도 칭찬도 용돈도 뭐 하나 진실이 없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힌 용돈 기입장을 돌려받았을 때 거짓말을 썼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주전부리를 사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가족끼리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여행을 끝나가는 지금 소감을 나누는 것도 일상적인 것이지 않을까. 나쁘지 않은 여행이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다. 묻지 않았다. 대신 용산역에 도착하면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 말했다. 엄마는 좋다고 말했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대답이 없었다.


용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2층에 있는 식당가로 향했다. 기차에서 괜찮은 집을 찾아두었는데 잘못 들어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하니 아빠는 어린애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식당의 위치를 찾아 그쪽으로 가려는데 아빠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짜증이 났다. 나는 됐다고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철 타는 곳으로 향했다. 단순히 아빠가 칭얼대고 화를 내서 짜증이 난 걸까. 아니다. 형만 고생했냐고 숙소부터 교통편까지 다 알아본 나는 고생한 것이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돈을 못 받은 것이 서운한 것일까. 아니다. 그냥 다 서운했다. 내가 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고 가는 지하철을 멍하니 바라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 가던 중 배고파 아빠와 칼국수를 먹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빠가 형에게만 돈을 준 것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다 알겠다 말하고는 끊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지하철을 두어 번 더 보냈다. 휴대폰에서 엄마 이름으로 십만 원 입금 알림이 왔다. 엄마에게 무슨 돈이냐고 물었다. 아빠가 줬다는 답장이 왔다. 먹은 것이 없는데도 속이 불편했다. 돈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뭐를 원하는 걸까.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용돈 기입장을 돌려받던 날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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