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국밥으로도 해장되지 않는 것이 있다.

나주 여행기 ( 15 )

by 조매영

집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조식 대신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왔다. 병이 지나간 후와 숙취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머리가 아프다는 것과 기운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밥그릇에 담긴 계란에 국물을 몇 숟가락 넣고 기다린다. 엄마가 국밥에 계란을 넣으려 하길래 말렸다. 이렇게 먹는 것이라고 말하며 계란에 국물을 넣어주었다. 아빠는 어떻게 하고 있나 보니 정수리만 보인다. 계란을 국밥에 넣었나 보다.


콩나물을 뒤적거리며 흰자가 하얗게 익는 것을 본다. 익어야 희게 되는 것을 왜 흰자라 부르게 된 걸까. 익지 않은 상태의 흰자는 흰자가 아니란 것일까. 머리가 커서야 아들 취급을 받는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약이려나.


다 큰 어른도 부모 앞에선 애라는 말이 있다. 부모 앞에 앉아 있는 나는 큰 것도 아니고 안 큰 것도 아닌 기분이다. 성숙한 아이들은 커서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기 쉽다지.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지 않은 이유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진다.


병이 떠나며 입맛도 다 데리고 간 걸까. 별로 먹고 싶지 않다. 수란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계란을 엄마는 그릇 째 들고 후루룩 마신다. 나도 하얀 부분보다 투명한 부분이 더 많은 수란을 들고 마신다.


엄마는 전라도 식당이라 그런지 맛이 다르다며 감탄사를 감추지 않는다. 서울에도 있는 체인점이라 말하려다 말았다. 좋은 기분을 애써 망가트리는 사람은 한 명이면 족하다.


혼자 식사가 끝난 아빠는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애써 한 숟가락을 퍼 먹으니 속이 풀리는 것 같다.


어릴 적에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가족과 식당에 갈 때이다. 어릴 때 외식이란 것을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쥐새끼처럼 눈칫밥에다 게눈 감추듯 먹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식당에서 음미하며 먹는 것이 쉽지 않다.


의식하며 천천히 두 번째 숟가락을 뜬다. 두 번째 숟가락에도 속이 풀리는 것 같다. 국물이 역대급으로 시원해서 풀리는 건지 아빠가 앞에 없어서 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엄마도 어느새 다 먹고 아빠를 따라 나갔다.


혼자 남아 국밥을 비우며 중얼거렸다. 가족은 되어도 식구는 못 될 집안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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