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난걸까?

by 조매영

확실히 나는 엄마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지금 내 나이보다 어린 엄마가 10년 된 원피스를 입었던 모습을 보고 어릴 적의 나는 참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어떻게 옷을 10년이나 입을 수 있지 싶었다. 그런데 나도 지금 10년 된 티셔츠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어떻게 입어왔나 생각해 본다. 그냥 입다 보니 10년이 지났다.


오늘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을 살피던 중 흰 장갑을 발견했다. 운구용 장갑이다. 후배의 관을 들었을 때 꼈던 장갑이다.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전화했을 때 힘껏 울어주던 아이. 나 하나 살려보겠다고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헌혈증을 모으던 아이. 나를 살리고는 자기는 살릴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난 아이. 를 들어 올렸던 장갑이다. 저게 왜 저기 있더라. 모르겠다.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책이라도 실컷 읽으라고 두었던 것 같다. 벌써 9년이 지났다. 살다 보니 9년이 지났다. 믿기지 않는다. 장갑아 넌 정말 9년이 지난 것 맞니. 너무 하얗네.


전에 살던 동네가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은 김에 다녀오기로 했다. 상가들은 비었지만 간판은 그대로 있었다. 간판을 읽으며 걸어 다녔다. 어떤 가게는 지나가며 했던 생각이나 전화 통화가 떠올랐고 어떤 가게는 친절한 사장님이 떠올랐다. 뒤 돌아 지나 온 자리를 살피니 기억으로 떠들썩하다. 아파트가 들어선 후에 왔다면 기억은 이렇게까지 살아 있지 못했겠지. 종이처럼 나풀거리다 이내 날아갔겠지.

자전차점 간판 앞에 걸음을 멈췄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분명 나보다 나이가 많다. 재개발되면 이런 간판도 버려지려나. 이 동네에 살던 초반까지는 분명 영업하시던 모습을 봤었는데 영업을 하지 않으신 지 오래된 것 같다. 자전거 수리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느린 몸동작과 확신에 찬 손놀림이 인상 깊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간판도 뭔가 바랜 글자 너머 당당함이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오랜 세월 이곳에서 일하실 수 있으셨나요 물어본다면 일하다 보니 세월이 지났다고 하시려나.


간판이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온다고 여기 있던 상가들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새롭게 오고 가는 사람들에겐 애초에 없던 것들이 되겠지. 어떻게 10년, 20년, 30년을 이곳에서 지냈습니까. 가 아니라 언제 이곳에 10년, 20년, 30년이 된 상가가 있었습니까. 질문하게 되겠지.

그때 나는 뜬금없이 흰 장갑을 들어 올리며 여기에 후배가 들렸다고 말하겠지. 후배는 분명 있었다고 말하겠지.


확실히 나는 엄마를 닮다 못해 뛰어넘은 것 같다. 물건뿐만 아니라 기억도 버릴 생각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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