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커버에 야광별이 붙어 있다. 내가 이사 오기 전에 4인 가구가 살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집주인이 그들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갔다고 했다. 아이가 붙였을까. 부모가 붙였을까. 간격이 일정하고 골고루 분포되어 것을 보니 급하게 붙이진 않은 것 같다. 겨우 야광별 하나로 추측하는 것이 웃기긴 하지만 화목한 가정이었을 것 같다.
불을 꺼도 야광별은 빛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빛이 났겠지. 그들은 하루의 빛을 머금은 야광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어떤 다짐을 했을까. 그들도 아랫집의 꽹과리 소리와 북소리를 들었겠지. 동네 사람들의 사소한 일에도 오가는 고성도 들었겠지. 혼자 사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4인 가구가 살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긴 하다. 색이 바랜 야광별을 본다. 그것이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증표였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준비물을 사고 남은 돈으로 과자와 야광별 스티커를 한참 동안 저울질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결국 준비물은 환불하고 과자와 스티커를 샀었다.
선생님에게 준비물 때문에 혼났지만 가방 속에 있는 스티커가 위로해 주었다. 수업 시간 내내 삐뚤빼뚤 별을 그렸다. 선생님에게 또 혼났지만 하굣길에 먹을 과자가 위로해 주었다. 혼내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항상 나를 미워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집에 아빠가 있을까.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 하굣길, 과자 하나를 입에 넣으며 아빠가 있다 중얼거리고, 다음 과자에 아빠가 없다 중얼거렸다. 집까지 반 밖에 가지 못했는데 과자를 다 먹고 말았다. 서운한 마음에 마지막에 뭐라 중얼거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맞으면 더 아팠다. 가방에서 스티커를 꺼냈다. 별이 많았지만 별똥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비는 거라던 동화책이 떠올랐다. 아빠가 집에 없었으면 좋겠어요.
리모컨은 던지는 것이 아니라 TV를 켜는데 쓰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혹이 난 이마를 부여잡고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회사가 늦게 끝나 아빠를 보기 힘들다던 친구. 집에서 보기 힘든 아빠가 있다니. 내 아빠가 진짜인 걸까. 친구 아빠가 진짜인 걸까. 누군가는 가짜 아빠일 것 같았다.
바깥이 조용해질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다. 바깥이 조용해져서야 스티커를 꺼낼 수 있었다. 스티커를 꺼내다 들키면 어디서 났냐는 말도 없이 때릴 것이 분명했다. 천장에 야광 별을 하나씩 붙였다. 낮은 천장의 다락방을 기어 다니며 이곳저곳 붙였다. 다락방을 밝히기엔 터무니없이 희미한 빛. 그래서 더욱 좋았다. 우주에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조금 미워진 별똥별을 들었다. 소원을 들어주기엔 자기 몸 하나 밝히기도 벅차 보였다. 사실 나도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 믿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토닥이며 붙여주었다.
다락방에 전등이 없던 터라 별은 빛을 금방 잃었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별을 나도 금방 잊었지. 구원은 항상 순간이었고 지속되지 못했지.
떠나간 가족은 조명 커버에 아직도 야광별 스티커가 붙어 있다는 것을 기억할까. 아니 야광별을 붙였다는 것을 떠올릴 수나 있을까. 커버 안에 벌레 사체들을 치우기 위해 분리하던 중, 형광등을 연결해 놓은 장치에서 부품이 하나 떨어져 나왔다. 부품을 들어 살짝 힘을 주니 바스러졌다. 스위치를 눌렀는데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조명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커버를 한 번 청소하고 껴 놓았다.
떠나간 가족의 집 주소를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조명을 바꾸는 날, 나는 이 집에서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고. 혹시나 이 집에서 나쁜 기억이 많으셨다면 별을 붙이셨을 때를 떠올려주라고. 너무 이 집을 미워하지 말라고. 당신들이 두고 간 구원의 잔재 덕분에 어린 날의 구원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순간의 구원도 구원이라고. 부디 소홀히 여기지 말아 달라고. 쪽지에 적어 조명 커버와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