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새삼스럽다. 하지만 오늘처럼 추운 날에 겨울을 불러보지 않는다면 언제 불러볼까. 햇볕 뜨거운 날에 겨울을 중얼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면 이름이란 그렇게 항상 생각나는 것이 아니다. 노랫말처럼 혹은 주문처럼 겨울을 중얼거리며 입김을 내뿜기도 하고 손을 비비기도 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춤이 아닌 척 춤을 춰보기도 한다. 습기 찬 창문에 얼어붙은 이름을 쓰고 지우고 새도 그리고 배도 그리고 비행기도 그리다 하트를 그려보기도 한다. 하트를 지우며 이내 마음이 쓸쓸해져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의 이름을 써보다 그런 마음조차 얼어붙어 다 쓰기도 전에 지우는 계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中 에서
내 겨울이 왔다.
혼자 있는 집, 혼자 있는 방. 혼자 있는 나. 누군가 오기를 기다린다. 혼자 있는 집에 혼자 있는 방에 혼자 있는 내게 난방을 트는 일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코로나 덕분에 난방을 틀 일이 더욱 없다. 한참을 서성이다 구석에 시든 꽃처럼 주저앉았다.
가족과 살 때 내 방은 유난히 외풍이 심했다. 바닥이 뜨거워도 벽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은 차라리 바깥이 나았다. 잠을 잘 때면 이불을 꽁꽁 동여매고 깔아놓은 이불 밑으로 들어갔다. 찬 공기에 몇 번이나 깰 때면 더욱 바닥에 파고들었다. 어느 날은 두더지가 된 꿈을 꾸거나 김치가 된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런 집에서도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쫓겨나 신축 빌라 옥상에서, 고추 말리던 마루에서 중학교 인조잔디에서도 자기도 했었다. 덕분에 추위에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다. 추위에 강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내 몸은 그렇게 튼튼하지 못했다. 참 많이 아파왔다. 사람은 오만하기 쉽고 자신을 단정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이 아니라 나만 그럴 수도 있겠지.
따수미 텐트를 친 침대에 기어가 전기장판이 달궈지길 기다린다. 혼자 있기도 좁은 공간이다. 혼자 있는 집, 혼자 있는 방, 혼자 있는 텐트, 혼자 있는 나. 작아진 내 공간이 따뜻해질 때까지
겨울이다. 내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