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May 12. 2024

별꽃의 꽃말은 추억

 엄마는 텃밭과 나를 번갈아보더니 신기해했다. 나는 무엇을 키우고 있는지 말하던 중이었다. 머쓱해졌다. 말을 멈추고 쭈그려 앉아 잡초나 뽑았다. 텃밭 농사 한다고 몇 번이나 사진을 보냈는데 믿을 수 없었나 보다.


 내가 삐진 것처럼 보였는지 엄마도 말없이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았다. 뜬금없이 엄마가 잡초 하나를 치켜들었다. 이게 뭔지 아냐고 물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별꽃이었다. 그나마 생김시와 이름을 매치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였다. 


 별꽃이라 대답하며 된장국이나 샐러드로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워했다. 샐러드로 먹을 있는 줄은 몰랐다고도 했다. 나는 별꽃이 알려줬다고 대답했다. 유튜브와는 다르게 착한 사람에게만 들린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별꽃의 꽃말이 추억인 이유가 다 있었다.


 물뿌리개에 물을 채우러 가기 전 엄마에게 상추 수확을 부탁했다. 엄마에게 상추 따는 법을 아냐고 물었다. 엄마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숨긴 채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걸 또 순진하게 믿고 시범을 보였다. 상추를 뜯던 중 엄마가 지난 주말 본가 텃밭에서 상추를 수확했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고개를 들어 엄마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친 엄마는 이제 눈치챘냐며 박장대소했다.

 엄마가 옆 텃밭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혼자 감자 줄기를 잘랐다. 애인이 줄기를 잘라야 씨알이 굵어진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위도 모종삽도 없어 손톱으로 누르고 천천히 뜯었다. 풍성하다 못해 우람하던 것들이 얄팍해지니 측은해졌다. 뜯은 것들을 한데 치우고 일어나 엄마를 봤다.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모습이 꼭 절친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백혈병 의증을 받고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도 응급실 대기실에서 엄마는 저랬다. 처음 본 보호자들과 금방 친해져 함께 울고 걱정하고 응원했다.

 앞 텃밭의 방울토마토가 슬며시 줄기를 뻗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내 상추를 노리고 있다. 조금만 지나면 진짜로 내 상추를 잡아먹을 것만 같다. 상추가 먹히기 전에 텃밭 관리자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똥풀(치커리, 상추, 쑥갓)들이 잘 자라고 있다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니 아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뿌린 다른 텃밭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못 자라고 있었다. 다른 텃밭들은 솎아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혹시 엄마는 알고 있을까 싶어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너무 깊게 심은 것은 아니냐고 했다. 손으로 살짝만 파서 심어서 깊게 심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디게 자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설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장 바꿀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삼겹살과 항정살을 구워 먹었다. 오랜만에 상을 펴서 먹는 식사였다. 저번에 혼자 먹었던 것보다 상추가 더 아삭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걱정하게 될까 봐 그냥 맛있다고만 말하며 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