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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5. 2024

새싹은 온몸으로 밀고 나온다.

 작물뿐만 아니라 잡초도 파릇파릇하다. 푸른 잡초를 뽑았다. 처음 텃밭일을 할 때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이랑에 규칙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작물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잡초가 되었다. 잡초가 된 것들이지만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고랑에 별꽃, 강아지풀, 토끼풀, 민들레가 켜켜이 쌓였다. 낯선 풀이 보일 때는 휴대폰 어플로 이름을 찾아보고 뽑았다. 바랭이, 기름골, 코스모스가 고랑에 켜켜이 쌓였다.


 쭈그려 앉아 흙을 만지니 잠깐이나마 씨름을 배웠던 것이 생각난다. 샅바를 잡는 법과 자세를 잡는 것만 배우고 도망쳤었다. 샅바를 잡고 당기는 것을 배운 것이 잡초를 뽑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배웠던 것들은 아무리 쓸모없게 느껴져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다.


 대학교 수시 때 자기소개서에 씨름을 잠깐 배웠고 시를 쓰면서 그만뒀다고 썼었다. 면접장에서 교수님은 씨름과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었다. 다행히 면접을 보기 얼마 전 김수영 시인의 『시여, 침을 뱉어라』를 읽었고 거기에서 나온 문장을 인용하며 대답했다.


 김수영 시인은 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씨름도 샅바를 잡고 당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도 씨름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씨름을 그만두고 시를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은 상당히 흡족해하셨지만 불합격을 주셨다. 내신 성적이 엉망이었다.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뭐 하고 사나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다른 대학교 합격해 잘 다녔다.


 잡초를 보며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비록 내게 뽑혔지만 잡초도 온몸으로 땅을 밀고 나왔다. 나는 정말 씨름 대신 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갔을까. 시를 쓰지 않은지 너무 오래다. 일단 밀고 나가봐야 텃밭인지 자연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씨름처럼 시에게도 도망가려고 그러나. 그러곤 싶지 않다. 무서워서 못 밀고 가겠으면 눈을 꼭 감고 굴러라도 보자.


 상추가 많이 자랐다. 며칠 내에 또 수확해야 할 것 같다. 저번에 수확한 것은 세 번 나눠 먹었다. 상온에 보관하니 세 번째 먹을 즈음에는 시들해져 있었다. 시들해진 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었다. 시들한 상추는 맛이 없었다. 쌈장 맛으로 먹었다. 시든 것의 식감은 죄책감과 많이 닮았다. 이번에 수확할 때에는 냉장 보관을 하던가 더 빨리 먹어치우던가 해야겠다.

 감자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멈춰 서더니 무엇을 심은 거냐고 물었다. 감자라고 했다. 자신이 심은 감자는 웃자란다고 어떻게 심었길래 그렇게 잘 자라고 있느냐고 연달아 물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잘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요 왜 이렇게 잘 자랄까요.

 모르는 사람에게 칭찬받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가족 단톡방에 자랑하려고 감자 사진을 보냈다. 텃밭이 왜 그렇게 횅하냐고 놀림받았다. 감자라서 거리를 두고 심은 거라고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도 잘 키웠다고 인정할 정도인데 쥐뿔도 모르면서 놀리기나 하다니 다음엔 자랑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랑에 자주색 풀이 자라고 있었다. 어플로 찾아보니 갓이라고 한다. 주변 밭을 둘러봤다. 어디에도 갓은 키우고 있는 집은 없었다. 전에 텃밭을 하던 사람이 심었던 것이 이제야 고개를 든 것일까. 고랑에서 자라고 있었다면 뽑았을 텐데 이랑에 자라고 있으니 고민된다. 일단 키워 보기로 했다. 다른 잡초들에게 미안해졌다.

 당근을 심은 자리에 드디어 싹이 올라왔다. 제일 늦게 올라와서 그런 걸까. 잎 모양이 일으켜달라고 뻗은 손 같다.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 같아 귀엽다. 나중에 못 먹는다고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 잎도 먹을 수 있나 검색해 봤다. 당근에 잔뿌리가 나기 전에는 잎과 줄기를 샐러드나 무쳐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남들보다 늦게 올라왔지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수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똥풀(쑥갓, 치커리, 상추)들 중에 쑥갓이 압도적으로 잘 자라고 있다. 서로 마구잡이로 피어 있는 것이 귀엽다. 식물에겐 수돗물보다 비가 보약이라고 하던데 연달아 오는 비가 그치면 많이 자라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자라야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은 자라면 한데 모아 샐러드로 해 먹을 예정이다. 간장 1, 매실청 1, 식초 1, 참기름 0.5, 물 1, 깨 조금, 고춧가루 조금이면 괜찮은 쑥갓 샐러드 소스가 된다.

 

 텃밭에 작물들이 모두 자라기 전에 시를 한 편 완성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작물들도 잘 먹을 수 있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시에게서 도망가고 싶지 않다. 시들어 죄책감이 된 맛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봄을 힘차게 온몸으로 밀며 지나가야지.

텃밭에서 눈인사 해준 고양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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