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입구에 있는 벚나무가 푸르다. 봄이 끝난 기분이다. 바람에 꽃을 털어내던 모습이 선명한데 비 오던 날 마저 털어냈나 보다.
봄이 끝났는데 나는 여태 무엇을 했지. 자책을 하려고 폼을 잡으려던 중 전화가 왔다. 엄마다. 쑥 캐다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한다. 쑥떡을 할 생각인데 먹을 거냐고 묻는 질문에 봄냄새가 물씬 났다.
그러고 보니 아직 4월도 끝나지 않았구나. 날씨를 보면 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너무 덥지 않나. 기력이쇠해질 정도로 땀이 나는데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다니. 아직 봄이라니. 이상기후가 생각보다 많이 심각한 것 같다.
며칠 전 텃밭 단톡방에서 구멍 난 바질을 몇 개 따왔는데 달팽이 세 마리 붙어 있었다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심은 사람은 아직 맛도 못 봤는데 먼저 먹어치우려고 하다니 괘씸한 친구들이네요라고 쓰고 올리려던 중, 텃밭 뒤가 바로 산이니 산에 던지자는 글이 올라온 것을 봤다. 기다렸다는 듯이 안된다고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한다는 글도 바로 올라왔다. 살려두면 잎채소가 남아나질 않는다는 말로 대화는 끝이 났다. 쓴 글을 올리지 않고 지웠다. 사진 속 달팽이는 작고 검었다. 다 컸을까. 한참은 더 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처리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달팽이도 나도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기 참 쉽지 않다.
씨감자를 심었던 곳에 싹이 났다. 감자 싹은 다른 싹과 다른 느낌이다. 든든하다는 것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싸우면 다 이길 것같이 생겼다. 처음 유럽에 감자가 들어왔을 때 저주받은 작물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저주받은 작물이라 불린 이유 중에 싸움 잘하게 생겨서도 있었을 것 같다.
텃밭에 뭉텅이로 자란 똥풀(상추, 치커리, 쑥갓의 씨앗)들을 솎아주었다. 뿌리가 하나밖에 없는 것을 보니 좀 그랬다. 다 버리진 않고 몇을 빈자리에 옮겨 심어주었다. 주변에서 고추나 방울토마토를 심어야 한다고 해서 비워둔 자리였다. 열매채소는 5월에 심으라고 했으니 그전까지 키울 수 있는 데까진 키워봐야겠다. 애인에게 똥풀들 옮겨 놓은 것을 보여주니 쌈채소 지옥에 빠질 거라고 놀렸다.
당근이랑 바질은 싹을 틔울 생각도 안 하건만 잡초는 여기저기 잘도 올라온다. 땅 속에서 잘 자라는 것에 대한 노하우 공유도 안 해주는 것 같으니 호미로 잡초 뿌리까지 뽑아 멀리 버려놓고 왔다.
상추 모종들이 많이 큰 것 같은데 언제 먹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애인에게 물으니 지금 따서 먹어도 상관없다고 먹고 싶을 때 먹으라고 한다. 막상 따서 먹어보려고 하니까 너무 작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키우기만 하고 수확은 못하는 것 아닐까. 남들 상추들도 사진 좀 찍어놔야겠다. 남들 상추가 작아졌을 때 나도 따라서 수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