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Apr 14. 2024

작물이 주인의 말소리를 듣고 잘 자랐으면 좋겠다.

 며칠간 매일 물을 줬는데 이틀에 한 번 물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틀에 한 번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가는 것은 매일 가기로 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을 주지 않는 날. 일단 텃밭에 오긴 왔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괜히 고랑을 밟고 지나다녔다. 발소리 잘 들리냐. 어제 먹은 물은 소화가 잘 되고 있냐.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너희는 한국 땅에서 나고 자라고 있으면서 그깟 물 하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냐. 투덜거렸다. 그만 돌아갈까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상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려니까 정 없게 느껴졌다. 두 손 가득 물을 담아 흩뿌려줬다. 이놈들아 내가 왔다 간다. 혹시 자느라 발소리 못 들은 녀석 있다면 그만 정신 차리고 햇빛이라도 제대로 먹어라.


 늦잠을 잤지만 물을 줬다고 지인에게 자랑하다가 한소리 들었다. 낮에 물을 주면 모종이 탈 수 있단다. 그러고 보니 콩콩팥팥이란 예능에서도 낮에 작물에게 직접적으로 물을 주다가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었다. 왜 기억을 못 했던 거지. 다음 날 혹시 뭐가 잘못되어 있을까 봐 유심히 둘러봤다. 상추 모종 몇이 매가리 없어 보였다. 겉잎 몇 개가 연노란색이 되어 있었고 구멍도 나 있었다. 햇빛 때문인가 미안해져서 애인에게 연락해 한탄했는데 원래 그렇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주변 다른 텃밭 상추들도 겉잎이 연노란색으로 변한 것이 좀 있었다. 정신 좀 차려야겠다. 예전에 본 에피소드도 기억 못 해서 똑같은 실수를 하질 않나. 주변 텃밭은 살펴보지도 않고 절망하지 않나. 가지가지한다. 아! 나중에 가지도 심어볼까. 언제 심어야 하는 거지. 모종을 심어야 하나 씨앗을 심어야 하나. 찾아봐야겠다.

 물을 주러 가는 날 어제까진 분명 없던 새싹이 자라 있었다. 치커리, 상추, 쑥갓 씨앗을 마구 뿌려둔 자리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귀여웠다. 물을 주는 날이라서 다행이었다. 물을 마구 주었다. 귀여운 강아지보고 똥강아지라고 하니까 너희 이름은 똥풀들이다. 물 많이 먹고 햇빛도 많이 먹고 잘 자라라.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애인에게 자랑했다. 씨감자에도 물을 주렸는데 못 보던 싹이 보였다. 애인의 텃밭에는 씨감자가 하나 싹을 틔었다고 하던데 혹시 내 텃밭도 싹을 틔운 것이 아닐까 두근거렸다. 애인에게 감자 싹이 맞냐고 물었다.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잎을 살짝 들어보았다. 가볍게 뿌리와 들어 올려졌다. 잡초였다. 마구 나 있는 새싹들로 눈이 돌아갔다. 저것들도 설마 잡초가 아닐까.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주변 텃밭을 살피니 우르르 자라 있는 새싹들이 보인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뭉쳐서 나면 나중에 솎아줘야 한다던데 어떻게 솎아주지. 벌써 마음 아프다. 

 아직도 잡초와 작물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잡초라고 생각해서 작물을 뽑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으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것들아 자기주장이 좀 더 강해지란 말이다. 나는 네가 키운 작물이다. 왜 말을 못 하느냔 말이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최소한 작물과 잡초를 구별할 수는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