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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07. 2024

우당탕탕 텃밭 생활이 시작됐다.

 얼떨결에 텃밭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도시 텃밭을 하는 애인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충동적으로 집 근처 도시 텃밭을 신청했는데 된 것이다. 2024년 04월 06일 텃밭 시작일이다. 시작일인데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광대장간에서 산 호미만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구청에서 상추모종 24개와 상추, 치커리, 쑥갓이 섞여 있는 씨앗 한 봉지, 대파 씨앗 한 봉지를 준다고 했다. 애인은 호미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냥 호미도 아니고 대장간까지 가서 산 호미다. 호미만 믿기로 했다.


 텃밭에 도착하니 사람이 많았다. 본격적인 옷차림들을 보니 크록스 신고 터벅터벅 온 것이 부끄러워졌다. 세평이라고 했는데 세평이 이렇게 좁았었나. 텃밭은 생각보다 좁아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텃밭 도우미 선생님이 모종을 나눠주기 전 시범을 보여주신다길래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심는 방법과 간격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생각보다 별 것 없어 보였다. 순간 내 별명을 깜빡하고 있었다. 고치면 망가지고 만들면 부서지는 저주받은 손. 


 막상 모종을 받고 텃밭 앞에 서니 막막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밭을 갈아엎고 있었다. 분명 도우미 선생님은 밭을 갈아엎지 않고 그냥 심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모르겠으면 따라 하는 것이 제일이다. 옆 텃밭 노부부를 따라 하기로 했다. 무슨 거대한 포크 같은 것으로 땅을 갈아엎길래 기다렸다가 빌렸다. 삽질하듯 땅을 갈아엎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텃밭을 하겠다고 한 걸까. 애인은 이게 정말 즐거운 걸까. 옆옆자리 할아버지 텃밭에선 사람 얼굴만 한 돌이 나왔다. 도우미 선생님을 향해 역정을 내시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내 텃밭에선 큰 돌이 나오지 않았다. 옆옆자리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면서 언제 남은 밭을 갈고 모종과 씨앗을 다 심으셨는지 텃밭이 완성되어 있었다. 신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던데 맞는 말 같았다.

 호미는 어디에 써야 하는 걸까. 도우미 선생님은 호미로 구멍을 파서 모종을 심었던 것 같은데 막상 해보니 손으로 파서 심는 게 능률이 더 좋게 느껴졌다. 다 심고 나니 옆 노부부가 모종의 간격이 너무 좁은 것 같다고 했다. 손으로 고랑을 만들어 씨앗을 봉지째 마구 뿌렸다. 애인에게 끝났다고 자랑 카톡을 보냈는데 씨앗을 그렇게 뿌리면 나중에 솎아주느라 고생할 거라 했다. 텃밭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미워해봤자 어쩌겠나.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데. 힘들게 심었으니 이제 니들 알아서 잘 컸으면 좋겠다 중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피곤했다. 조금 눈 좀 붙일까 하다가 말았다. 애인이 바질, 당근, 씨감자를 들고 온다고 했다. 어설프게 자는 것이 더 피곤할 거 같았다. 


 애인을 만나 텃밭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심어 놓은 모양새를 보고 혼날까 봐 눈치를 보며 걸었다. 텃밭에 도착하자 애인은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호미를 들더니 고랑을 내고 이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애인은 이랑을 하나 완성하고는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했다. 흙 한 번 밀고 애인을 쳐다 보고 흙 한 번 밀고 애인을 쳐다 보고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반복하니 잘했다고 칭찬을 들었다. 


 호미로 이랑에 구멍을 먼저 낸 다음에 감자와 씨앗을 심었다. 효율적이었다. 저주받은 손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렇게 효율적인 것이 어떻게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지.


 완성된 텃밭을 보니 그럴듯해 보였다. 당분간은 물만 주면 된다고 한다. 벌써 잡초가 걱정이다. 잡초와 작물을 구별할 수는 있을까. 모두 비슷한 것을 심었으니까 많이 난 것이 작물이고 아닌 것을 잡초라 생각하면 되겠지. 다음부턴 도움 받지 않고 혼자 해봐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가늠되는 일만 할 수는 없지. 우당탕탕 텃밭 생활이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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