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침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May 27. 2024

게으름의 천재가 등장했다.

 그제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너무 어려웠다. 첫 문장을 몇 번이나 지웠다 다시 썼는지 모르겠다. 결국 첫 문장들을 땔감처럼 모으고 불태우는 마음으로 지우고 자버렸다. 지우지 않으면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글을 힘들게 쓸 운명을 타고났어. 내가 세계를 마주하는 방식이 그렇다 하셨다. 나쁜 건가요. 바꿔야 할까요. 교수님은 그 답은 내게 있다고 했다. 


 세계를 마주하는 방식은 목소리와도 같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성대 결절이라던가 나이가 들어 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중심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발성법처럼 흔들리지 않는 시선은 훈련할 수 있다. 어제 쓰고자 했던 이야기는 내 음역대보다 너무 높은 이야기였다. 역량이 부족하다. 게으른 탓이다.


 아침 다섯 시 알람에 일어나면 좋겠지만 항상 눈을 뜨는 알람은 여섯 시다. 내가 짠 아침 루틴은 일기를 쓰고 운동을 한 다음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는 것이었는데 며칠 동안 운동은 못했다. 일기 쓰는 시간도 빠듯하다. 저녁에 글을 쓰고 브런치를 보다 보면 열 두시다 보니 처음 설정한 알람에 일어나면 빠듯하지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쉽지 않다. 거기다 이제는 도시락을 싸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새벽 배송으로 보온도시락을 샀다. 곧 헬스장이 다시 열리니 식단을 해볼까 싶어서였다. 어제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다만 더 피곤했을 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계획한 것들이 어떻게 그리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까.


 도시락은 닭가슴살과 김치 그리고 현미밥을 채워 넣었다. 식단을 시작하면 냉장고 속 내용물들은 단순해진다. 맛있는 게 있으면 눈이 돌아가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단순한 도시락을 보니 6살 때 소풍날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생각난다. 반찬은 감자채 볶음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엄마에게 그때 맛있었단 이야기를 지금도 하지만 엄마는 미안해만 한다. 도시락을 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메뉴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바삐 일을 할 수밖에 없던 것을 이제는 안다. 


 퇴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버릴 것을 버리는 것이다. 식단은 심플한 것을 좋아하면서 왜 글도 아침 루틴도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계획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지. 나는 실천은 쉽지만 욕심이 많아 몸도 마음도 쉽사리 상한다. 계획을 버리고 그대로 마주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어깨에 힘을 빼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이 떠오른다. 일단 눕자. 눕고 생각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