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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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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07. 2024

겪은 만큼의 고통만 안다.

 손톱이 반듯한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반듯하게 자를 수가 있을까. 나는 이번에도 손톱을 엉망진창으로 잘라냈다. 그것도 모자라 살도 집었다. 결국 피를 봤다. 선생님의 말씀하셨지. 반듯한 손톱이 그 사람의 청결함이나 사람됨을 나타낸다고. 청결함은 어떻게든 하겠는데 사람됨은 쉽지 않다.


 손톱을 깎다 살이 찝히는 게 내 병보다 자신에겐 더 큰 일이라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다. 솔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럴 수 있지. 우리는 아는 만큼의 고통만 이해한다. 다만 그가 지인의 결혼식에서 내게 친한 척을 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끝까지 냉소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마음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헬스장에서 이어폰을 낀 채 친척형과 한 시간가량 통화했다. 스쾃을 하며 형이 작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레그 익스텐션을 하며 형에게 아빠를 부정하는 소리를 했다. 레그 컬을 하면서 그들 덕분에 고단해진 현재의 삶을 이야기했다. 헬스장엔 아무도 없다. 당시에 친척 집을 전전하던 형에게도, 아빠에게 맞던 나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아버지만 비난했다. 동조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사람은 여러 가면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 아빠가 형에게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작은 아버지도 내게 그런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할 수 없다. 우리는 그냥 서로에게 대나무 숲이었다. 메아리는 서로의 머릿속에서 맴돌다 사라질 것이다. 독은 독으로 다스릴 수 있다던데 우리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간 쓴 글을 읽는다. 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읽으면 낯선 감정을 느낀다는데 별로 그렇지 않다. 처참한 감정은 과거나 현재나 낯설어지기 어려운 것 같다.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말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반항도 비난도 할 수 있다지만 과거의 무방비한 나는 그곳에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위로할 수 있나. 글을 지우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담담하다. 시간은 무섭다. 이제 과거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대나무 숲인 것만 같다. 머릿속에서 메아리가 맴돈다. 이 메아리도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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