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이나 학창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듣는 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음 한 편에는 내 유년의 고통이 부정당한 것 같아 괴로워하면서도 꼭 그렇다. 메모나 기록도 정확하기 어려운데 기억이 어떻게 정확할 수 있을까. 심통이 나 그렇게 따지면 믿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따지고 싶어 진다. 그래도 기억이 남긴 소용돌이는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그럴까. 내가 어제 갑자기 학교생활기록부가 보고 싶어 진 이유다.
언제 적 「TV는 사랑을 싣고」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학교생활기록부를 생각하자면 그 프로그램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각자의 사랑을 추적해가다 의뢰자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힌 것을 읽어주는 장면은 큰 재미였다. 일 년을 관찰자로서 혹은 보호자로서 지켜본 사람이 요약한 문장은 냉정하기 그지없었지만 애정이 있어 마음 한편을 건드렸다.
이전에는 학교생활기록부를 발급받으려면 직접 학교에 갔어야 했지만 2003년 이후 졸업생은 나이스라는 포털에서 발급받아 컴퓨터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나는 내 과거를 되묻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가 아니라 은밀하게 학창 시절 평가를 찾아볼 수 있다니 8할의 게으름으로 큰 내게는 너무나 좋아진 세상 같다.
지금도 글씨가 난잡하답니다. 선생님. 리코더는 지금도 못합니다. 선생님.
지금도 정리를 잘 못합니다. 장난도 좋아하고요 규칙도 잘 지키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과 마주하려고 노력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아직도 고생 중이랍니다. 선생님
초등학생 시절 나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였다. 하교 후 집보다 집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였다. 집 밖에 있는 시간과 비례하여 맞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까 말이야. 선생님들이 적어 놓은 문장들에서 선생님이 모습이 보인다. 딱딱한 문장일수록 그 사람을 더욱 드러낸다. 선생님들 앞에 놓여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기 기억하는 나와 학교에서의 내가 오버랩된다.
더 이상 기억 속의 내가 아니다. 나와 내가 마주 본다. 쭈뼛거리는 내 손을 잡고 선생님들이 판단한 것들에 대해 반박하고 싶어 진다. 우리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그럼 어떤 아이지? 내가 나를 올려다보며 글썽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니? 고개를 젓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