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기억은 평평해서 뒷장을 보기 어렵다

2021-01-08

by 조매영

너는 너의 기억을 믿니?

유년 시절이나 학창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듣는 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음 한 편에는 내 유년의 고통이 부정당한 것 같아 괴로워하면서도 꼭 그렇다. 메모나 기록도 정확하기 어려운데 기억이 어떻게 정확할 수 있을까. 심통이 나 그렇게 따지면 믿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냐고 따지고 싶어 진다. 그래도 기억이 남긴 소용돌이는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그럴까. 내가 어제 갑자기 학교생활기록부가 보고 싶어 진 이유다.


언제 적 「TV는 사랑을 싣고」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학교생활기록부를 생각하자면 그 프로그램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각자의 사랑을 추적해가다 의뢰자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힌 것을 읽어주는 장면은 큰 재미였다. 일 년을 관찰자로서 혹은 보호자로서 지켜본 사람이 요약한 문장은 냉정하기 그지없었지만 애정이 있어 마음 한편을 건드렸다.

이전에는 학교생활기록부를 발급받으려면 직접 학교에 갔어야 했지만 2003년 이후 졸업생은 나이스라는 포털에서 발급받아 컴퓨터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나는 내 과거를 되묻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가 아니라 은밀하게 학창 시절 평가를 찾아볼 수 있다니 8할의 게으름으로 큰 내게는 너무나 좋아진 세상 같다.



지금도 글씨가 난잡하답니다. 선생님. 리코더는 지금도 못합니다. 선생님.
지금도 정리를 잘 못합니다. 장난도 좋아하고요 규칙도 잘 지키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과 마주하려고 노력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아직도 고생 중이랍니다. 선생님


초등학생 시절 나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였다. 하교 후 집보다 집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였다. 집 밖에 있는 시간과 비례하여 맞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니까 말이야. 선생님들이 적어 놓은 문장들에서 선생님이 모습이 보인다. 딱딱한 문장일수록 그 사람을 더욱 드러낸다. 선생님들 앞에 놓여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기 기억하는 나와 학교에서의 내가 오버랩된다.

더 이상 기억 속의 내가 아니다. 나와 내가 마주 본다. 쭈뼛거리는 내 손을 잡고 선생님들이 판단한 것들에 대해 반박하고 싶어 진다. 우리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그럼 어떤 아이지? 내가 나를 올려다보며 글썽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니? 고개를 젓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안다. 아마 커서 내가 네가 될 줄 몰랐어 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지금의 나를 어린 내가.

안다고 할 때가 제일 위험할 때다. 다음부터는 인정해야겠다.

나는 기억을 어느 정도 믿는다. 믿는 것은 진실 혹은 거짓과 다른 문제다

다만 기억은 평평해서 뒷장을 보기 어려울 뿐이라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