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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l 22. 2024

텃밭에 아무것도 없던 것이 거짓말 같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밀려왔다. 바람에 닿은 살갗이 축축해졌다. 내 방이 울기 좋은 장소란 것을 바람도 알았나 보다. 


 며칠 동안 비가 참 많이 왔다. 빗소리가 그립다 생각한 것이 거짓말 같다. 빗소리는 금방 지겨워졌다. 빗소리를 잊을 날만을 생각했다. 그때는 빗소리가 지겹다 생각한 것이 거짓말 같겠지.


 혼자 앓는 밤이면 아프지 않은 날이 아니라 아팠던 날을 떠올렸다. 잔병앓이를 많이 한 덕분에 떠올릴 기억이 많았다. 일상을 살면서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기억들이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앓는 밤도 거짓말이 될 것이라 믿으면 참을만했다. 항암제도 그랬다.


 텃밭을 잊을 순 없다. 창문을 열어둔 채 집을 나섰다. 조금 걸었는데 땀범벅이다. 걸을 때마다 땀이 땅에 떨어졌다.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축축하다. 바람이 못 갈 곳 없고 못 볼 것 없다. 세상엔 울 일이 참 많다. 


 비가 오는 동안 상추가 많이 자랐다. 한 번은 더 수확하려고 했는데 기다려주지 않았다. 상추를 뽑으며 비를 맞더라도 수확하는 것이 옳았을지 생각했다. 알 수 없었다.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대체로 마음이 좋지 않았던 일은 실행했으면 몸이 좋지 않게 되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좋은 순간은 없는 걸까.

 식물도 비명을 지른다는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봤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 연구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당근을 수확했다. 줄기가 얇아서일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빠르게 뽑아나갔다. 뽑는 도중 부러지는 것보다 들리지 않는 비명이 더 두려웠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던 비명은 길게 지를수록 절망감이 커졌다. 당근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서리태가 많이 자랐다. 새순을 잘라주어야 서리태가 많이 열린다고 했다. 과거 감자 잎을 뜯었던 것처럼 뜯어보려다 말았다. 전정가위를 하나 사는 것이 좋겠다.

 이제 싹이 올라오기 시작한 여름 상추와 깻잎이 잡초와 구별되지 않는다. 조금 더 자라길 기다려야겠다.

 

 상추를 뽑은 자리에 무언가를 심긴 해야 할 텐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래도 이번엔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스스로 정해봐야겠다. 글을 쓰던 도중에 심고 싶은 작물이 생겼다. 


 항암을 끝내고 다음 항암을 기다리며 집에서 쉴 때 엄마는 매일 비트에 요구르트를 넣고 갈아주었다. 비트가 피를 맑게 해 준다고 어디서 들었다고 했었지. 진짜 효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았으니 없진 않을 것 같다. 몸 안에 피가 돌지 않는 곳이 없다면 분명 마음에도 피가 돌 것이다. 내가 심은 비트에 요구르트를 넣고 갈아 마시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맑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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