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를 하던 중 칼날이 살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거울 속 얼굴에 묻은 거품이 붉어지고 있었다. 거품이 완전히 붉어지자 쓰라림이 몰려왔다. 수건함에서 수건을 하나 꺼냈다. 수건을 펼치지도 않고 얼굴을 파묻었다. 바스락거리며 거품이 수건에 스며드는 소리가 들렸다. 쓰라림도 함께 스며들었다.
면도를 언제 처음 했더라.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도 피를 많이 봤던 것은 기억한다. 면도크림은 무슨 대충 비누칠하고 일회용 면도기를 아무렇게나 움직였더랬지. 친구들은 면도를 아빠에게 배웠다는데 아빠가 면도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라도 할 수 있었다면 피를 좀 덜 봤으려나. 괜한 생각에 얼굴이 구겨졌다. 쥐어 짜내진 통증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저번 텃밭 일기를 쓸 때 분명 자주 가기로 다짐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비가 와서 못 가고 더워서 못 가고 우울해서 못 갔다. 많이 자랐을 잡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창 밖을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내일로 미룰까 했지만 내일이 모레가 될 것을 알기에 일단 나가기로 했다.
무성한 잡초를 보니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이 떠올랐다. 입 주변을 쓸어내렸다. 상처가 따끔거렸다. 잡초와 작물을 구별하기 쉽지 않았다. 모종이 아니라 씨로 심었던 여름상추가 보이지 않았다. 폭우에 발아도 하지 못하고 모두 죽은 것 같았다. 한참을 찾아봐도 소용없었다. 눈이 따끔거렸다. 햇빛에 베인 것 같았다. 수염도 잡초도 쉽지 않다.
잡초들 사이 잊고 있었던 쪽파가 보였다. 잊고 있던 것이 무안해질 정도로 쪽파는 잘 크고 있었다. 봄에 심었던 대파와 키가 비슷할 정도로 잘 컸다. 아니 대파가 잘 크지 못한 걸 지도 모르겠다.
깻잎은 잘 자라고 있었다. 심은 자리가 아니라 텃밭 바깥에서 말이다. 깻잎이 있어야 할 자리는 잡초로 무성했다. 어떻게 텃밭 바깥까지 가게 된 것일까. 왜 텃밭에 심은 것은 하나도 자라지 않은 것일까. 내가 텃밭에 오지 않은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순 치기를 하지 않아서일까. 서리태가 무섭게 자라 있었다. 잎을 뜯다가 포기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내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잡초를 정리하고 일어나니 팔 안쪽이 쓰라렸다. 언제 긁혔는지 기다란 흉터가 있었다. 마음만 말고 몸도 좀 와서 자주 둘러보라는 것처럼 잡다 놓친 자국처럼 흉터가 있었다. 텃밭 일도 면도처럼 평생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