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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20. 2021

무모한 여행기


 순천만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았다. 빛은 혈액 같았다. 태양이 빛을 머금자 붉게 생기가 돌았다. 태양은 오늘 거둔 피로 내일을 비춘다 생각하니 수혈받은 날들이 떠올랐다. 낯선 피가 줄을 타고 흘러들어 왔었다. 아프거나 어떤 이물감도 없었다. 하지만 선홍색의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서늘해졌다. 태양이 지나간 자리, 서늘한 감정이 밤으로 오고 있다. 사람들은 사라지는 태양에만 감탄했다. 나만 이 서늘함을 이해하는 것 같아 특별해진 것 같았다. 한참 감상에 빠져 있는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자 친구가 휴대폰으로 나와 일몰을 찍고 있었다. 야. 어느 태양이 진짜 태양이냐?      



 우리는 문학 특기생으로 입시를 함께 했던 사이였다. 대학 주최 백일장에서 같은 시제로 시를 썼었다. 발표된 시제에 울거나 웃었다. 누군가는 시상대에 위에 올랐고 누군가는 시상대 아래에서 시샘했었다. 매 순간 조마조마했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니 즐거웠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다.      


 항암 2차가 끝나고 휴식이 아니라 여행을 선택했다. 항암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몇 명의 환우를 보냈고 나도 몇 번의 고비를 넘겼다.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다음 항암이나 그다음 항암에 죽을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빛나던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힘찬 포부와는 다르게 현실은 냉정했다. 현실은 돈이었다. 엄마에게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지만 돈이 없었다. 여러 곳을 들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교통비가 필요했다. 병원비도 비싼데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없었다. 내일로 여행을 선택 한 이유였다. 엄마에게 설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일로 여행은 내일을 향해 간다는 뜻 기획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야. 엄마 엄마는 의심하지 않았다. 항암도 힘들었으니 잘 놀다 오라며 응원도 해주었다. 엄마는 입석으로 가는 여행이라고는 꿈에도 몰랐겠지.     


 마지막 날 순천만을 갔던 순천을 제외하고는 여행 대부분을 모텔에서 보냈다. 교통비만 생각했는데 배 이상으로 숙박비가 들었다. 친구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타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헤어졌다.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거나 알바를 하느라 바빠 오래 보기 힘들었다. 마지막 날 순천만을 같이 오른 친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 민머리를 놀리지 않았다. 사람은 하나의 세계이며 우주라던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낯선 지역보다 친구들이 더 낯설었다. 오지 탐험가가 된 것 같았다. 순천에 오기 전까지 후회뿐이었다.     


 우리는 투덕거리며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오르던 길은 죽을 맛이었는데 내려오는 길은 여유로웠다. 생각보다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던가 친구가 말했던가 누가 말했어도 상관없던 말이 울렸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사람은 또 쉽게 안 변한다지. 너도 참 너다.

 웃는 친구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진다. 어느 태양이든 내일뜰거야 달아나는 친구의 웃음소리가 얄밉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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