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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05. 2021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

 기약 없는 병원 생활에 매번 편의점에서 장을 보는 일은 부담이다. 그래서 며칠에 한 번씩 보호자들끼리 병원을 벗어나 마트에 들린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검은 봉지를 열어보면 요즘 보호자 사이에서 어떤 식재료가 화제인지 알 수 있었다. 소고기 부살이 유행이었을 때에는 고생했었지. 전자레인지로 익힌 부살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마트에 다녀온다던 엄마가 예상보다 많이 늦었다. 병원은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물어 무서웠다. 병원만큼 한을 품은 채 죽은 사람이 많은 곳이 있을까. 늦는 엄마가 신경 쓰였다. 아직 항암 전이라 나갈 수 있긴 했지만 체력을 아껴야 할 때였다. 갑자기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항암 전후로 우리는 배턴처럼 걱정을 넘겨주는구나 싶어 졌다. 엄마가 왔다. 누워 있는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엄마에게서 미세하지만 술 냄새가 났다.     


 그날따라 마트에 간 보호자들이 쿵 짝이 잘 맞았다고 했다. 유난히 자기 환자들 모두 컨디션이 좋았다고 했다.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라도 연결된 걸까. 마음이 좋아져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노래방에 갔다고 했다.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다, 남편이 아들이 아버지가 생각나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했다. 맥주도 한 캔씩 마셨다고 했다. 서로 힘내자고 등을 토닥여줬다고 했다. 그러다 빨리 온다 하고 다 같이 뛰어왔는데 이 시간이라 했다.  

   

 알겠다고 자라고 하니 엄마는 금세 잠을 청했다. 자는 엄마를 보니 내가 참 엄마 생김새를 많이 닮았구나 싶었다.


 배선실에 앉아있을 때 보호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병간호를 오래 하다 보면 직업병이 생긴다고. 몸도 마음도 성치 못하다고. 서서히 자신의 환자의 몰골을 닮아 간다고.

 내가 엄마를 닮은 게 아니라 엄마가 나를 닮아간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몇몇 환자가 보호자가 자신에게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일에 팔이나 다리 하나 떨어지는 것처럼 난리를 치던 것을 본 것이 생각났다. 닮다 못해 동일시되어버린 것이다. 그건 더 끔찍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여야 했다. 그래야 각자 목숨을 하나씩 온전히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을 합쳐봐야 목숨이 두 개가 될 리 만무했다.


 초라한 몰골이 되지 않도록 잘 먹고 잘 버텨야지. 닮아도 누가 누굴 닮았는지 구분할 수 없게 해야지. 다짐했다. 한참이나 엄마를 들여다보다 초코바를 하나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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