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反射)

2) "미안하다." 말해주기.

by 경자호

아이가 이제 곧 10대가 된다.

초등학교 2학년의 마지막을 보내던 얼마 전,

출근했던 아내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아이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아이가 이사 갈지 모른다고 했다던데,

이사가게 되면 사전에 이야기 달라고 한다.

3학년 반배정과 교과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순간 뜨거운 부끄러움이 온몸을 휘몰아쳤다.


회사를 정리하고, 월급이 사라지며,

경각심을 주고자 장난을 좀 쳤다.

부쩍 무언가를 사달라는 아이에게,

갖고 싶은 것 다 가지려면 이사 가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 내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 아이였다.

장난치지 말라고 나를 다그치고 끝났었다.

어느 날 유독 나만큼이나 장난기 많은 아내가,

아이에게 장난을 친 것이다.

"자꾸 그럼 이사 간다."

평소에 아이에게만큼은 진실했던 아내였다.

이 한마디에 아이가 사색이 되어 나에게 왔다.


아뿔싸 이때 멈췄어야 했다.

"아빠 우리 정말 이사가?"

"응, 돈 많이 쓰면 가지~"

관성처럼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이는 장난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냈다.


며칠 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처음엔 나만큼이나 입이 가벼운 아이에게

가볍게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부모의 농담도,

아이는 정말 큰 영향을 받는다.

아이의 우주는 우리였고,

우리라는 우주는 너무나 가벼웠다.


얼른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해 줬다.

"OO아 엄마, 아빠가 장난친 거야"

"OO 이는 진짜로 생각했어?"

"그랬다면 엄마, 아빠가 미안해"

"다음엔 안 그럴게~"


아이는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그래? 그럼 이사 안 가는 거지?"


나는 힘주어 이야기해 줬다.

"어 돈 많이 쓰면 간다고 했잖아"

"OO이 돈 많이 안 써서 안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고 생각했다.

나의 불안과 강박을 없애긴커녕,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다.

불안과 강박을 그토록 저주하면서,

그걸 그대로 아이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찌를 듯한 고통의 자괴감이,

뱀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장난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아이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있었다.

무엇이든 해주는 방종도 문제지만,

매사 아이의 자유로운 생각을 틀어막는,

통제로 불안을 심어준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다시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해 줬다.

아빠가 다시는 이런 장난치지 않겠다고.

아빠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우리 절대 이사 안 간다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

아내와 함께 약속했다.


며칠이 지난 오늘

영어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이사 간다고 했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군데 다 이야기했구나.

나만큼이나 입이 가벼운,

아이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사 안 간다고.

장난친 건데 죄송하다고.

얼굴이 오늘도 화끈거렸다.


수학학원은 내일인데,

연락이 올지 모르겠다.


이번 해프닝을 겪으며,

"부모 말의 무게"를 생각했다.

아이에게 부모가 우주다.

그 우주 안에 중력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경망스러운 일상을 반사(反射),

하리라 다짐한다.


오늘 옆에서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 줘야겠다.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되겠다고.

그동안 철없는 엄마, 아빠 상대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미안하다."

이야기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