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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달 May 23. 2019

21.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1부. 감각 선별하기)

돈, 시간보다 우선 감각관리

집에는 여섯 개의 문이 있답니다.

밖과 연결된 다섯 개의 문과 창고로 통하는 한 개의 문.

때때로 불청객이 몰래 들어와 금고를 털거나 불을 지르기도 했어요.

심지어 나갔다고 생각했던 불청객은 창고에 몰래 숨었다가

다시 나와 금고를 털고 불을 지르기 일쑤였어요.

불청객의 인기척을 느꼈을 땐 이미 늦었어요.

벌써 금고는 비어 있었고 집은 여기저기 불타고 있었어요.

저는 이제 결심했어요.

문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불청객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예요.


 삶의 만족도는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과 비례한다. 가족과 대화하는 따뜻한 시간, 여행에서 보내는 설레는 시간, 음식을 즐기는 풍요로운 시간, 침대에서 잠자는 아늑한 시간을 사람들은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에 끝내려면 턱도 없는 일이지만, 20분만 더 주어지면 더 이상 괴로운 일이 아니다. 실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는 불필요한 활동을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활동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에 돈과 시간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한 푼이라도 월급을 더 받는 것, 하루에서 1초라도 시간을 더 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원하지 않았던 욕구에 돈과 시간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돈과 시간은 감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돈과 시간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돈 관리나 시간관리보다 ‘감각관리’를 해야 한다. 감각은 돈과 시간 지출의 원인이다. 감각에서 감정이 생겨나고, 그 감정에 따라 소비한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지만 광고에 유혹되어 구매한다. 광고와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해 머릿속에 ‘원하지 않았던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TV홈쇼핑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물건을 산다. 평범한 사람들은 원하지 않았던 욕구가 발생(4단계)하고, 일단 구매한 다음 가계부를 정리하며 돈을 관리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 돈과 시간을 써버렸다. 돈을 비교적 잘 관리하는 사람은 홈쇼핑을 보면서 머릿속에 원하지 않았던 욕구가 일어남(3단계)을 감지하고 지출을 막는다. 돈은 지켰지만 홈쇼핑을 보는 데 이미 시간을 써버렸다. 감정을 관리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홈쇼핑 채널을 켜지 않는다. 혹 하고 사봤자 쏙 하고 박아둘 걸 알기에 홈쇼핑 자체를 보지(2단계) 않는다. 돈과 시간 모두를 지켰다.

 번거롭게 감각관리(2단계) 하지 말고, 애초부터 환경(1단계)을 바꾸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TV홈쇼핑이 없는 환경으로 바꾸려면 전파가 없는 외딴섬으로 떠나야 한다.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가족과 친구와도 떨어져야 한다. 편하게 누리던 생활환경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 TV를 치우면 되지 않느냐고? 그럼 활기를 불어넣는 예능, 여유를 선사하는 여행 프로그램, 눈과 귀를 열어 주는 다큐멘터리도 포기해야 한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환경(1단계) 대신 감각(2단계)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가장 감쪽같은 시간 도둑, 광고


 우리를 덮치는 광고의 범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감정과 마음의 원리를 다루다가 갑자기 엉뚱한 소재를 다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광고는 시간과 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삶의 만족은 시간과 비례한다. 사람들은 항상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한다. 우리의 시간과 돈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바로 광고다. 현대에서 삶과 광고는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광고는 돈보다 시간을 가져가는 명수이다. 카드 사용대금은 명세표라도 있지만, 시간은 누가 얼마큼 가져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보는 것만으로 시간은 소비되어버린다.

 이제 처음에 등장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은 자기 자신이다. 불청객의 방화는 마음속에 불(火)을 지피는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나 갑의 횡포 등을 의미한다. 금고털이는 시간과 돈을 가져가는 광고다. 밖과 연결된 다섯 개의 문은 오감(눈, 귀, 코, 입, 피부)이다. 창고는 기억을 의미한다. 불쾌한 사건은 오감을 통해 들어와 즉시 행동하기도 하지만 기억의 창고에도 들어간다. 잊을 만하면 몰래 빠져나와 우리를 화나게 하고 시간과 돈을 가져간다.

 그들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을 잘 감시하고 있다가 그들이 다가오면 자물쇠로 잠그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들이 마음을 불 태우지도 훔쳐가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https://www.ytn.co.kr/_ln/0106_201607191040210217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의 부모는 마녀가 공짜로 차려놓은 음식을 먹는다. 결국 그들은 돼지로 변해 마녀의 노예가 된다. 마녀가 차린 공짜 음식처럼 현실에도 기업이 차려놓은 무료 마케팅이 범람하고 있다. 감동적인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눈길을 사로잡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다고 해서, 기업은 우리에게 기본료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광고를 꼭 보게끔 만들어 그 수익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드라마만 보고 싶어도 절대 드라마만 볼 수 없다. 필히 광고를 봐야 한다. 드라마 시작과 끝뿐만 아니라 중간에도 광고가 등장한다. 심지어 드라마 속에서도 광고 상품이 교묘하게 등장한다. 가끔 주인공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배너나 팝업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동영상을 보려면 광고를 먼저 봐야 한다.

 이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감각 주권을 빼앗긴다.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없다. 드라마든 사이트든 원하는 것만 골라서 볼 순 없다. 광고를 끼워서 봐야 한다. 광고에 홀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 갖고 싶어 진다. 무료라는 것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면 어렵사리 모은 돈도 잃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까지도 잃게 된다.


복잡한 현실 속 감각 주권을 잃지 말 것


 불확실의 시대다. 급변하는 세상에선 그 어떤 미래도 정교하게 예측할 수 없다. 현대인은 불안을 안고 산다. 억눌려진 불안이 광고를 만나면 소비로 분출된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용어로 뒤범벅된 보험에 가입한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끼워 팔기로 웃돈이 좀 들지만,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달 수십만 원의 보험료를 지출하면서 돈이 부족하다고 허덕댈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미래를 대비하기도 한다. 학원, 인터넷 강의에 빠지는 이들이 있다. 강의를 들을 때는 잠시 불안을 잊고 무언가 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진정으로 원했던 공부인지 의심스럽다. 원하지 않았으니 더 공부하고 싶지 않아 그만둔다. 끈기가 부족하다며 자신을 책망하고,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흥미가 없으니 머릿속에 남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불안감은 더해지니 또 다른 자기계발에 목맨다. 악순환이다. 허송세월일 뿐이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잃는 경우다. 헛된 자기계발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으며,그 어떤 것도 책임질 수 없다.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탄탄히 다지지 않고 내달리는 자기계발은 헛고생에 불과하다.


 사람은 끊임없이 오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맡아보고, 만진다. 광고는 오감을 통해 스며든다. 광고는 빼어난 디자인과 매혹적인 소리로 필요하지도 않은 명품을 사라고 권유한다. 클럽 앞 현란한 네온사인과 자극적인 음악은 모든 걸 잊고 즐기라고 한다. 튀김 냄새를 풍기는 치킨집을 지날 때면 없던 식욕도 솟아나 침과 함께 돈도 흘리게 된다.

 문제는 자신이 원치 않았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명품 지갑을 사는 것도 치킨을 먹는 것도 애초에 자신이 하려던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에 필요한 돈이 사라졌다. 시간도 훌쩍 지나가버렸다. 명품을 걸친 채 뱃살이 삐져나온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또 다른 문제는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의 지나친 자극에 익숙해져 현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명 저널리스트 캐서린 제이콥슨 라민의 저서 《당신의 뇌를 믿지 마라》 는 듀크대학 신경생물학 교수 로렌스 카츠(Lawrence Katz)의 말을 전하고 있다.


“TV와 영화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도록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일종의 대규모 주의력 장애를 겪고 있다. 영상매체의 자극이 뇌 속 조악한 방아쇠를 당기도록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감각의 외설화 현상이다. TV와 영화의 자극 속에서 실제 삶은 파리하고 소심해 보이게 되고 사람들은 차츰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방아쇠를 당기면, 자신은 시간을 관통하는 총알이 되어버린다. 스마트폰에 파묻혀 있다 정신을 차리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 다음이다. 감각에 휘둘려 인생을 뭉텅이로 도둑맞아버렸다. 남은 것은 말라붙은 말초적 자극의 파편뿐.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은 황홀의 세계로 인도한다. 장엄하게 흘러가는 한강의 모습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온종일 자신을 가로막던 삶의 문제는 한낱 먼지가 되어 이내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도 석양도 보지 않고 그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일단 켜면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삶을 앗아가는 사기꾼이라도 화려한 옷차림이면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지혜를 일깨우는 현자라도 수수한 행색이면 문전박대하는 게 요즘의 모습이다.


 시끌벅적한 대화와 함께 잔이 부지런히 오가는 술자리. 어느새 몸은 비틀거리고 혀가 꼬인다. 어쩌다 이렇게 많이 마신 건가? 분명 첫 잔은 내가 스스로 마셨는데 그다음 술은 내가 술을 마신 건가, 술이 술을 마신 건가? 삶이 감각에 취한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시끌벅적한 대화보다 더 자극적이고, 다음 잔을 부르는 술보다 더 흡입력 있는 ‘매체의 자극’에 휘청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TV를 켜고 몇 분만 지나도 뇌의 판단력 부위가 활동하지 않는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상태가 된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단 20분 만의 탐닉으로도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원치 않는 감각들과 과감히 작별하라. 오감과 기억의 문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원치 않는 불청객의 방문을 막아야 한다. “Turn off TV, Turn on Life.” 미국 NGO인 ‘TV Turnoff Network’의 구호는 TV에 찌든 현대인에게 출구 방향을 알려준다. TV만이 아니다. 모든 불필요한 감각의 원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라.


감각관리로 삶을 꾸리자


 감각관리는 감각 차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족한 감각은 채워야 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은 어떤 감각으로 삶을 풍성하게 꾸려갈지 떠올려보자. 연락이 뜸했던 동료와 점심을 함께하고, 화려하진 않더라도 저렴하고 담백한 음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 보자. 반가운 대화로 귀를 즐겁게 하고, 식사 후 하늘을 보며 산책하자. 풀내음을 맡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일을 빨리 끝내고 아이를 보듬는 기쁨을 누리자. 자기 싫어 칭얼거리다가 새근새근 잠드는 내 아이의 모습까지, 신이 내린 선물을 내치지 말고 모조리 받자. 굳게 마음먹지 않는다면, 바쁜 삶에 밀려 다음 기회로 미루기만 할 것이다. 부족한 감각을 채울수록 삶은 풍요로워진다.

 공자 또한 《논어》 <안연>편에서 감각관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여기서 ‘예’는 단순히 절차나 옷차림 같은 예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사람을 바르게 이끄는 올바른 가치가 표현된 모든 형태를 뜻한다. 사람을 수렁으로 빠트리는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 감각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예가 아닌 것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게 된다.

 지혜로운 삶을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하지만, 반드시 그전에 생각을 오염시키는 원인부터 차단해야 한다. 마인드 프로그램의 2단계를 바로잡아 3, 4단계로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각관리를 통해 감정과 돈과 시간을 보존하고 생각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자.


마인드 프로그램의 감각 필터링(감각 관리) <지키겠습니다, 마음>


다음 편 - 22. 다친 마음 재정비하기(2부. 악순환 탈출하기)


글로는 전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강의 일정 : blog.naver.com/flship/2215002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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