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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24. 2017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에곤 실레 <이중 자화상>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우리들 마음속엔 수많은 '나'가 있다. 가끔 친구들이 나를 표현하는 말을 들을 때면 그 다양함에 새삼 놀라곤 한다. 너는 적극적이고 활발한 애잖아. 넌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지. 하나인 내가 이렇게 상반된 이야기들로 묘사된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솔직히 나 자신도 나를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들다. 분명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 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것과 정반대 되는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때 깨닫는다. 그래, 내 속엔 나도 모르는 내가 많이 살고 있지.



그렇게 인정해도 왠지 불안하다. 나는 한 가지 명제로 정의되어야만 할 것 같다. 자기만의 확실한 특색이 있는 사람으로. 뛰어난 예술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자아를 드러내 왔다.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화상은 아마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것이 아닐까. 그는 예수처럼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자신감 있는 표정과 형형한 눈빛은 그가 내면 깊이 지니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뒤러도 한낱 인간인데 왜 자아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오락가락하는 여러 갈래의 '나'를 하나로 응축시켜 내보인다.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00년




불안정한 내면의 물길을 타인에게 보란 듯이 내보일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그런 점에서 매우 독특한 예술가다. 그는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인 천재였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아카데미의 보수적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실레의 머릿 속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과 욕망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아름다움'만을 그릴 순 없었다. 추하고 역겨운 것 역시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레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무작정 아카데미를 뛰쳐나온다. 그리고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홀로 간직해온 온갖 기괴하고 외설적인 이미지를 캔버스에 마음껏 그렸다. 뒤틀리고 왜곡된 신체로 가득 찬 그림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실레의 자화상이다.

그중에서도 <이중 자화상>은 작가 마음속의 소용돌이치는 혼란, 어지러운 분열을 잘 보여준다.




에곤 실레, <이중 자화상>, 1915



그림 속 두 남자는 모두 실레 자신이다.

아래쪽의 실레는 앙상하고 주름진 얼굴의 볼품없는 사내다. 움푹 파인 두 눈에는 적개심마저 비친다. 눈을 치켜뜨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매우 반항적이다. 앙다문 입술이 고집스럽다. 세상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을 자신감도 새 나온다. 반면 그의 머리 위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또 다른 실레는 어떤가. 이 사내는 아래에 있는 사내보다 온화한 표정이다. 앙상한 얼굴은 그대로지만 눈매가 한결 편안해 보인다. 동그랗게 뜬 두 눈이 선해 보인다. 아래쪽의 반항심 가득한 형상에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그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선한 남자와 어딘지 악해 보이는 두 남자. 어느 쪽이 진짜 에곤 실레의 모습일까? 그의 그림 속에서 단 하나의 자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실레는 말쑥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거침없고 때로는 난폭하기까지 한 그의 그림 세계와는 정 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돈이 없어도 항상 외모를 깔끔하게 가꾸었고, 결코 가난뱅이 화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실레는 결혼에 있어서도 '괜찮아 보이는' 선택을 했다. 첫 번째 연인이었던 발레리에 노이칠은 그의 뮤즈였지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여인은 아니었다. 반면 에디트 하름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실레의 미래에 보증이 될 수 있는이였다. 실레는 에디트와 결혼한다.




세상을 노려보는 에곤 실레와 유순한 얼굴의 에곤 실레.

그는 자신의 이중적 자아를 가감 없이 그림 속에 담았다. 남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신경 쓰고,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열렬히 사랑하던 연인을 저버린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적나라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그림을 그려댔던 남자. 자기 내면 깊숙이 자리한 추하고 볼품없는,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자아의 목소리를 보란 듯이 세상에 드러내 보였던 남자.



그러나 양면적인 삶을 살았던 실레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분명 내 속에도 수많은 내가 살고 있으니까. 실레는 인간이란 여러 가지 모습이 뒤엉켜 있는 존재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리라. 에곤 실레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1918년 가을,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에 임신 6개월째인 에디트를 먼저 잃고 3일 후 그도 죽는다. 에디트가 죽은 뒤 사흘 동안 실레는 몇 점의 스케치를 남기는데, 이것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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