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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10. 2017

반복과 트라우마

앤디 워홀 <은색차 충돌>


친한 동생이 지금까지 지원한 회사 몇 군데에서 모두 떨어졌다. 

자기소개서를 공들여 쓰고, 영어 성적까지 최고 점수대로 받았지만 1차 관문조차 뚫기 힘들었다. 미국 유학을 오래 한 아이라 한국 취업 시장에서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나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애는 많이 낙담했다. 그래도 워낙 긍정적인 친구라,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을 준비했지만 얼굴 한 구석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눈에 걸렸다. 그리고 가장 가능성이 높을 거라 생각했던 회사에서 또 떨어졌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 힘들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야, 처음엔 원래 다 그런 거야. 괜찮지?  




이제 이런 일 쯤, 아무렇지 않아.

한 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뭐. 




돌아오는 대답에 그래, 앞으로 수십 번도 더 겪을지 모르는 일인데! 짐짓 소리 높여 웃었다. 아무리 지겹도록 싫은 일이라도 지겹게 반복되면 우리도 모르게 그것에 익숙해진다. 처음의 슬픔과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고 이제 그 비슷한 일쯤, 별거 아닌 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앤디 워홀, silver car crash, 1963



똑같은 장면을 찍은 흑백 사진 15장이 다닥다닥 나열돼 있다. 자동차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고, 그 안에 얼핏 사람의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 흐릿한 화면이지만 분명, 처참한 광경임을 알 수 있다. 사진 15장이 마치 퍼즐처럼 붙어있는 왼쪽 면과 반대로 오른쪽 면은 텅 비어 있다. 비어있는 오른쪽 때문일까. 사진이 몰려 있는 왼쪽 면이 상대적으로 더욱 답답해 보인다. 이 작품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은색 차 충돌(Silver car crash)>. 워홀은 똑같은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반복했던 팝아트(Pop Art) 작가다. 그는 1963년, 미술평론가 진 스웬슨과의 인터뷰에서 맹세코 자신은 지난 20년 동안 똑같은 점심만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 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런 말을 했던 1963년에 <은색 차 충돌>을 완성했으니 그에게 '반복'은 하나의 강박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워홀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지 또한 상품처럼 대량 생산되고 소비된다고 생각했다. 

매스미디어는 연일 뉴스를 쏟아낸다. "자동차 전복 사고로 일가족 사망", "지진으로 129명 사망", "화재로 아파트 주민 32명 사망". 죽음과 재앙, 끔찍한 사고들은 매일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전달된다. 신문을 넘기며 오늘 또 사람들이 죽었네, 무감각하게 되뇌는 것. 반복을 통해 의미는 퇴색되고 상실된다. 반복은 감정이 생겨나는 것에 방어벽을 쳐 준다. 워홀은 은색 자동차가 찌그러진 사건 현장의 사진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에게 묻는다. 무서운 사건도 계속 보니, 무섭지 않죠? 아마 당신은 이 사건에 무감각해질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워홀의 반복은 상처의 회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는 반복을 통해 트라우마가 된다. 그리고 그 외상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흐릿한 흑백 사진들이 무미건조하게 나열된 이 작품을 제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흐릿함 속에서 차츰 형상을 찾고, 그것이 본래 자동차였다는 것조차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찌그러져버린 사고 현장의 은색 차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어떤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고 장면으로 인한 희미한 공포, 찰나의 사고로 죽고 만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생이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는다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 가져오는 허탈함 또는 허무함. 이러한 감정들은 계속 반복되는 이미지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오히려 내 속에 더 깊이 각인된 것 같았다.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더욱 요동치게 된 것이다. 



<은색 차 충돌> 확대컷




워홀의 반복은

상실한 대상에 여전히 강박적으로 매달려 있는 

멜랑콜리를 드러낸다.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강박적으로 그 추억에  매달릴 때, 우리를 엄습하는 우울함. 그렇다. 워홀의 작품에서는 상실한 대상에 대한 애착, 그 애착에서 비롯되는 우울함이 느껴진다. 또한 워홀은 말하고 있다. '상실'과 같은 괴로운 일은 아무리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외려 그 괴로움은 더 선명해질 뿐이라고.  되풀이되는 고통에 트라우마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귀하는 본 채용 전형에서 탈락하셨습니다.' 

이런 탈락 문자는 내 친한 동생에게 이미 익숙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홀의 <은색 차 충돌>이 보여주듯 반복은 상처를 전혀 치유하지 못한다. 상처의 골을 깊게 만들 뿐이다. 탈락했다는 문자가 트라우마가 되기 전에 그 아이에게 좋은 소식이 날아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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