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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17. 2017

단 한번뿐인 생을 향한 애착

그리스 무덤조각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반드시 경험하고 마는 것. 
바로 죽음이다. 



죽음이 달가운 사람, 있을까?  죽음은 천천히 혹은 예상보다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꼼짝없이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 공포는 더욱 뚜렷해지고 두려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죽음 이후 어떤 세상이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비교적 분명하고 구체적인 확신을 준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간다. 기독교가 공인(313년)된 이후,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영생의 이미지가 활발히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조각과 그림 등에서 발견되는 천국과 지옥의 형상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이 그곳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을 섬겼으며 사후 세계에 대한 교리가 없었던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무덤 조각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리스 무덤조각, 대리석, 450–440 B.C.



그리스 무덤 조각은 매우 세속적이다. 

세속적인 무덤 조각. 흥미롭다. 죽음 앞에서도 생을 놓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죽음 이후에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지금 놓아버려야 하는 이 생이 너무도 아깝고 아쉽다. 아름다운 소리로 아침을 알려오던 작은 새,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연회 때 나를 돋보이게 해주었던 빛나는 장신구,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고 그 이름조차 불러볼 수 없을 나의 하나뿐인 보물, 나의 소중한 아기. 그리스인들의 무덤 조각에 정성 들여 새겨진 것은 바로 살아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대상이었다. 




나는 이제 이승에서의 육체를 영영 떠나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딱 하나. 

살아있을 때 내가 소유했던 것 중 딱 한 가지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스인들은 죽은 뒤 망각의 강을 건넌 다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 결코 잊고 싶지 않은 것 한 가지를 무덤 조각에 새겨 놓은 건 아닐까. 



100 B.C



살아있을 때 가졌던 것들. 쓰다듬고, 지녔던 것들. 

그리스인들은 죽음 앞에서 자신들이 정말 '소유'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것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금세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애처롭고 쓸쓸한 눈길로. 그리스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내 두 눈으로 보았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사후 세계보다도 내가 살았고 보았던 이 세상이야말로 진짜 존재하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무덤 조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끔 이 생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면,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우스개가 더 이상 우스개가 아니게 된다. 그럼 다음 생은? 지금보단 낫겠지 막연히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다음 생이 있을까. 확답하기는 어렵다. 만약 없다면, 지금 이 생이 정말 딱 한 번뿐인 거다. 망했다고 자포자기했던 이번 삶이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면 쉽게 포기해버렸던 날들이 얼마나 아까울까. 



410 A.C.



그리스인들의 무덤 조각에는 이 생이 정말 한 번뿐이었다고 믿은 이들의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죽음 앞에서 보석함을 뒤적이며 슬퍼하는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반지인지, 가장 아끼던 귀걸이인지 알 수 없지만 여자는 분명 그 보석을 무엇보다 아꼈을 것이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기껏 보석 하나가 뭐 중요하냐 묻는 이도 있을 테다. 분명 여자의 모습은 세속적이다. 물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오직 자신을 기쁘게 했던 작은 보석 하나를 만지작거릴 뿐인 그녀의 모습은 외려 순수해 보인다. 너무도 솔직해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아프다. 


생을 향한 절절한 애착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내 가슴까지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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