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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Sep 26. 2017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이카로스를 위한 애도>


절제하지 않은 삶이 받게 되는 형벌에 대한 이야기는 무섭다. 

끝간 데 없이 욕심부린 이들은 모든 것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마저 잃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전을 읽지 않은 이도, 이카로스(Icarus)의 비극적 결말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영원히 가두어둘 미궁을 만들라고 명했다. 이카로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 부자는 어떤 연유로 미노스 왕의 분노를 사, 미궁에 갇히게 된다. 그때 다이달로스가 자신과 아들의 등에 매단 것이 바로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다. 그 날개를 달고 두 사람은 마침내 미궁에서 탈출한다. 아니, 다이달로스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카로스는 성공하지 못한다.



Hubert James Draper, The Lament for Icarus, 1898



다이달로스는 분명 아들에게 경고했다.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을지 모르니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아라. 그러나 이카로스는 새처럼 날 수 있게 되자 아버지의 경고도 까맣게 잊고 하늘을 향해 높이, 더 높이 날갯짓을 하다 에게해(Aegean Sea)에 곤두박이칠 치고 만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의 시신을 건져 어느 섬에 묻었고 훗날 그 섬은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 이카리아섬이라 불리게 되었다. 영국의 화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ubert James Draper,  1863-1920)는 이카로스가 에게해에 떨어진 바로 그 순간을 포착했다. 바다의 요정들이 이카로스 주변에 모여들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새카맣게 그을린 청년의 몸, 힘 없이 축 늘어진 두 팔과 다리. 이카로스에게 찰나의 자유와 희열을 선사한 두 날개 또한 붉게 타버렸다.





런던에서 태어난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는 로얄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보석 세공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예술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로마와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26세가 되던 해, 국비 장학생으로 뽑혀 양질의 예술 교육을 받기도 했다. 드레이퍼는 미술에 집중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셈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대영 제국의 절정기로 불리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였다. 풍요로움이 흘러넘치던 나라,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부모님, 화가가 되기에 전혀 모자람 없는 재능까지. 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환상'에 품을 내어 준다. 허황된 이야기를 허황되다 욕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이 너무나도 어려울 때 비현실적인 세계로 도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이상 충족해야 할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이 찾는 비현실적 세계는 '도피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드레이퍼 역시 환상에 몰두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주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신화에 따르면, 이카로스가 바다에 떨어졌을 때 이미 두 날개는 산산조각 나 흩어져버리고 그의 팔에는 아무것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끝없는 욕망, 그 결과로 얻은 죽음이라는 벌.  날개는 온 데 간데 없이 맨 몸으로 볼썽사납게 죽어버린 인간의 모습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의 말로를 나타내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그러나 드레이퍼는 끝쪽이 검게 타버렸지만 온전한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날개를 이카로스의 팔 위에 그렸다. 그래서일까. 드레이퍼가 그린 이카로스는 처참하고 끔찍한 몰골이라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고요하고 우아해 보인다.  



드레이퍼는 이 그림, <이카로스를 위한 애도>로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유럽 각국의 심사위원들은 색다른 시각으로 이카로스의 추락을 그려낸 젊은 화가의 재능에 감탄했다. 그는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으며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대중의 취향만큼 변덕스러운 것은 없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현대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는 고리타분한 옛이야기에 불과했다. 드레이퍼의 그림은 금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시들어가는 인기를 의식해서일까. 그는 그림 주제를 바꾸기도 했다. 신화 이야기는 접어두고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래도 왕년의 인기 작가였기에, 초상화는 쏠쏠한 수입원이 되었을 것이다. 드레이퍼는 56세가 되던 해, 애비 로드(Abbey Road)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동맥 경화였다.  




드레이퍼는 젊은 날, 도전 정신의 상징인 이카로스를 그려 세계가 주목하는 화가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는 그림 속 이카로스처럼 겁 없이 날아오르지 못했다. 초상화를 그리며 괜찮은 듯 살았겠지만, 말 못 한 고민과 스트레스는 그의 육체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Live fast, Die young and Leave a beautiful corpse.
방탕하게 살고, 젊을 때 죽으라. 그리고 아름다운 시체를 남겨라.



유명한 이 문구에서 방탕한 삶이란 세상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더 높이 날아보고자 했던 이카로스는 빨리 죽었고, 아름다운 시체를 남겼다. 그는 절제의 미덕을 상기시키는 하나의 상징이지만 패기와 도전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패가 두려운 현대인들에게 이카로스는 더더욱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안정된 삶만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돼버린 겁 많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체를 남길 기회는 없다.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에게 했던 경고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경고가 되지 못한다. 누구도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 높이 날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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