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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Nov 07. 2017

비하인드 스토리의 매력

에드가 드가 <에투알>


대학 시절 내내 합창 동아리 활동을 했다. 

1, 2학년 때는 메조소프라노 파트에서 노래했고 3학년 때는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정기 공연을 위해 우리들은 일주일 세 번씩 맹연습을 했다. 낡은 강의실, 삐걱거리는 의자, 겨울엔 춥고 여름에도 서늘함이 가시지 않았던 그곳에서. 그저 노래가 좋고, 함께 하는 것이 좋아 합창단에 들어온 친구들은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십 번의 리허설, 그리고 공연 당일 무대의 막이 오르면 그 후의 시간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그 시절의 장면들을 가끔 떠올려본다. 가장 선명하게 펼쳐지는 장면은 항상 똑같다. 막이 오르기 전, 분주하게 움직이던 무대 뒤의 웅성거림, 떨림, 한껏 부풀어 오른 공기. 




무대 뒤의 움직임들은 날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우리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입꼬리를 한껏 올린 채 만들어진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많은 것이 바뀐다. 물론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재밌지만 나는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다. 영화의 메이킹 필름, 소설의 에필로그, 어떤 사건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그 속에는 꾸밈없는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나만 이런 취향을 가진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페라 극장의 가장 좋은 좌석으로 꼽히는 발코니에서는 무대 위 배우들은 물론 객석의 표정, 심지어 무대 뒤의 움직임들까지도 볼 수 있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커튼 뒤 생생한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에드가 드가, <에투알(Étoile)>, 1876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 도 공연장의 발코니석에서 발레를 보았나 보다.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로 움직이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캔버스에 풀어낸 그림들을 그렸다. 그렇기에 드가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사진에 찍힌 사람들처럼 사실적인 표정을 띠고 있다. <에투알(Étoile)> 역시 발레 공연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프랑스어 '에투알'은 '별'을 의미하며 프리마 발레리나를 뜻하기도 한다. 선홍색 꽃잎들이 흩뿌려진 새하얀 튀튀를 입은 무용수가 황홀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그림 위쪽이 어쩐지 어수선하다. 커튼 뒤로 또 다른 무용수들의 발이 보인다. 몸을 풀기도 하고, 심호흡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들. 드가가 담아낸 무대 뒤의 어정쩡한 모습들이 매력적이다. 



유독 눈에 거슬리는 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서 있는 검정 양복의 사내다.


무대 연출자일 수도 있고, 공연을 후원한 인물일 수도 있다. 당대 프랑스에서 발레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위치를 염두에 둔다면 저 남자는 돈 많은 상류층 인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시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한 젊은 여성들이 발레리나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은 돈과 계급 상승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상품으로 내세웠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부유층 남성들은 발레 공연장에 수시로 드나들며 적당한 대상을 물색했다. 검은 옷 남자의 얼굴은 커튼 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은 무대 위 반짝이는 별, 아름다운 에투알에게 향해있으리라. 




뒷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드라마 본방송보다 미공개 스페셜 영상에 열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예쁘게 장식된 포장을 벗겨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모습만을 진짜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합창 공연을 위해 무대 위에 올랐던 우리들도, 막이 오르기 전 긴 드레스를 질질 끌며 흐트러진 모습으로 웃고 속삭이던 우리들도 모두 진짜다. 



드가는 <에투알> 속에 세련되게 다듬어진 겉면과 어둡고 적나라한 내면을 모두 담아냈다. 

그는 그 모든 면이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 없이 그저 아름다운 그림만을 그렸다는 드가에 대한 일각의 평가는 그래서 아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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