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만다라>
첫 화를 보자마자 빨려든 작품,
데이빗 핀쳐 감독의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s>는 세련된 영상과 정교한 스토리가 일품이다. 정치계의 치열한 권력 다툼과 머리싸움은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낸다. 주인공 프랭크의 작전이 성공했을 때는 마치 내 일 인양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것은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와 그의 아내,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의 관계다. 사랑을 넘어선 동반자의 결속력을 보여주는데, 시즌 3으로 갈수록 그 관계가 흔들리는 것 같아 마음 졸였다. “우리는 팀”이라고 말하는 그들 부부의 냉정한 사랑, 그 위에 쌓아가는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 매력적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많은 그림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백악관에 걸린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단 하나다. 시즌 3의 완결로 내달리면서 매우 상징적인 그림 하나가 드라마를 관통한다. 바로 티베트 승려들이 그리는 (만든다고 해야 할까) ‘모래 만다라’이다. 티베트의 승려들이 낮은 탁자 위에 낮게 몸을 구부려 완성해나가는 그림.
승려들은 갈아놓은 미세한 모래를 구리로 된 고깔의 용기에 담아 톡톡 두드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엄밀히 말하자면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의 그림과는 달리 널찍한 판 위에 모래를 ‘얹는’ 방식이다. 2500여 년 전부터 부처는 몸소 모래 만다라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극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종교 예술임을 주지 시키면서. 11세기에 이르러 인도에서 티베트로 전해져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모래 만다라가 완성되고 난 후의 의식이다.
승려들은 만다라가 완성되자마자 그것을 없애버린다. 커다란 붓으로 화려하고 장엄한 만다라를 휘저어버리는 것이다. 바로 ‘dissolution ceremony’, ‘해체 의식’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 정교한 형상을 만들고 다시 한 줌의 모래로 허무는 것. 모래에서 시작했으니 모래로 돌아가는 것은 지당한 논리임에도 나는 놀라고 있었다. 완성된 만다라를 밀폐된 유리관 속에 넣어 소중히 보관할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세속적인 생각에 죽비(竹篦)가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만다라 의식은 무상(無常), 즉 덧없음을 시리도록 각인시켜준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세상 만물의 이치를 극도로 응축된 의식으로 보여준다. 승려들은 다시 한 줌이 된 모래를 유리병에 담아 강물에 흘려보낸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는 승려들이 완성한 만다라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들이 그것을 다시 허무는 장면도 보지 못한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승려들과 그림에 당황한다. 그러나 다행히 만다라를 완성했을 때 누군가가 찍어놓은 사진이 있었다. 프랭크는 완성된 만다라 그림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클레어에게 선물한다.
“Nothing is forever. Except us."라는 메모와 함께.
하지만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그들의 관계도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고 영원할 것만 같던 권력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정상을 향해 질주할 줄만 알던 프랭크의 삶에 모래 만다라가 등장한 것은 이미 이룬 것을 허물고 이미 가진 것을 내려놓는 용기 또한 위대한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을까.
모래 만다라가 완성되자마자 유리 속에 안전히 보관되기를 바라는 나는, 속물일지도 모른다. 무엇도 버리지 못하는 욕심쟁이일지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럴 때'가 왔을 때 미련 없이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은 변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