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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Nov 21. 2017

나를 알아봐 줄 누군가

비비안 마이어 <자화상>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키, 무미건조한 표정, 그늘진 눈매. 

그녀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촌스런 옷차림을 하고 도시를 걷는다. 그나마 짧게 자른 머리가 1950년대 유행을 따라간다. 목에 건 투박한 카메라. 도시의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흥미롭게 쳐다보기도 했으나 이내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사랑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한 여자. 그녀는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간 속으로 아주 빨리 들어가,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갈길을 간다. 이렇게 50년 동안 그녀가 비밀스럽게 찍은 사진은 무려 15만 장에 달한다.



왜 누구도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여자는 그저 괴짜로 통할뿐이었다. 평생 독신이었던 여자는 여러 집을 전전하며 가정부 생활을 했고,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는 그녀를 전쟁 중 프랑스에서 망명한 유태인으로, 누군가는 스파이로 기억하고 있다. 이름도 여러 개였다. 모두 다 가명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녀를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라 부른다. 마이어의 사진들은 2007년, 미국의 역사가 존 말루프(John Maloof)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마이어의 사진 속에는 마이어의 눈길이 잠시 머물다간 이들이, 그들의 순간이 박제되어 있다.


 



무엇보다 마이어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요즘처럼 카메라의 셀프 모드가 없던 시절, 마이어가 가장 즐겨 사용한 도구는 바로 거울이었다. 윤기 없는 표정의 한 여자가 거울 안에 수없이 나타난다. 그녀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매우 사랑했던 걸까? 자화상은 작가의 고백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수십만 장의 사진을 통해 마이어의 자기애적 고백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엔 마이어의 이해 못 할 행동들이 마음에 걸린다. 수많은 가명, 자신의 정체에 대한 수많은 거짓말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곳의 조금 더 멋진 나. 마이어는 어쩌면  현실 속 자신이 너무 싫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자신을 꾸며댔지만 마이어는 리플리가 될 만큼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이토록 정직하게, 끊임없이 사진 속에 담아냈으니 말이다. 마이어의 사진에는  "그래도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야"라는 주문이 걸려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내게 가끔 묻곤 한다. "무엇이 예술인 가요?" 

이 질문은 하나의 핵심적인 물음으로 좁혀진다. 미술관에 걸려 누군가에게 감상되어야만 예술인가, 아니면 스스로 예술가라 생각하는 이들 모두가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섣불리 답을 내리기 어렵다. 마이어를 보며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마이어는' 발견'되었기에 천재 예술가가 된 것인가? 창고에 처박혀있던 15만 장의 사진은 발견되기 전에도 예술이었을까? 역시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이어에게도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 존 말루프는 마이어의 사진 필름으로 가득 찬 창고를 경매로 손에 넣고도 2년 동안이나 그곳을 방치했다. 2009년, 그는 우연히 마이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폭발적인 반응에 놀라게 된다. 세상은 비비안 마이어를 천재라 부르며 그녀의 작품을 찬양했다. 같은 해 비비안 마이어는 사망했다.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마이어는 자신을 천재 작가로 부르는 세상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에게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에서야 비비안 마이어를 알아봐주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내가 괜시리 안도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에는

알 수 없는 우수가 깃들어 있는 듯 합니다.

그녀가 집착했던 자신의 얼굴들을 조금 더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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