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와디스와프 포드코빈스키 <광란> 두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위클리 매거진 <한밤의 미술관> 1화 '<광란> -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의 두 번째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광분」 속 여자는 포드코빈스키가 사랑했던 이를 모델로 한 것이며 그 여자와의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림 속 여자를 찢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한 폴란드 상류층 집안에서 포드코빈스키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면서 그림을 둘러싼 루머는 더욱 뜨거워졌다. 화가를 고소한 이들은 에와 코타르빈스카(Ewa Kotarbińska)라는 여성의 가족이었는데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숙한 사교계 여인이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그림 속에 등장한 것이니 논란이 될 만도 했다.
실제로 포드코빈스키는 코타르빈스카와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 해 여름 머물렀던 바르샤바의 별장에서였다.
그곳에서 포드코빈스키는 함께 여름을 보낸 여러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안에는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광분」 속 여자와 코타르빈스카.
닮은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차이점이라면 그림 속 여자와 달리 코타르빈스카는 짙은 밤색 머리였다는 것 정도. 그림 속 벌거벗은 여인은 정말 코타르빈스카였을까.
진실은 작가와 코타르빈스카만이 아는 비밀이 되었다.
전시가 끝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포드코빈스키는 세상을 떠났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였다.
「광분」을 그렸던 3개월 동안 평소 앓고 있던 폐병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포드코빈스키는 정말 사랑에 실패했기에 그림을 찢어버린 걸까. 아님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의 뜨거운 피를 더욱 들끓게 한 것일까. 광분한 검은 말 위, 하얀 나체의 여인은 어쩌면 화가로서의 성공, 젊은 청년이 꿈꾸던 밝은 미래, 세상으로부터 받고 싶었던 찬사, 아니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응축된 ‘찬란한 희망’의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희망이 거품처럼 사라진 자리.
그곳에 남겨진 것은 검은 말처럼 미친 듯 날뛰다 끝내 자신의 그림을 난도질한, 한 남자의 절규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광기. 그 모든 것들을 따스한 가슴으로 품어줄 아름다운 여인은 그렇게, 사라졌다.
희망이 절망이 되었을 때,
포드코빈스키에게 그림 속 여인은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는 허상에 불과했으리라.
나는 감히, 젊은 화가의 슬픔과 분노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