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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uffy moment May 14. 2021

매일의 밑줄 1

5월의 읽는 날들

왜 매일 포스팅이 챌린지씩이나 되는 건지 알았다. 지금 목요일 밤 11시 40분이고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서 월요일에 읽은 것부터 되새기고 있음. 역시 벼락치기 인간에게 넉넉한 마감은 그냥 더 많은 노는 시간일 뿐.



21/05/10


주말에는 열몇 시간씩 자다가 월요일을 앞두고는 잠이 안 온다. 스트레스에 둔감한 성격인데 이것도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스트레스의 증상인 걸까.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잘 못 알아채는 편인 것 같다. 알아채는 시점에는 이미 해소가 불가능하고, 내가 나에게 시한부 판정을 내릴 수 없으니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대상에 시한부 선고를 내리게 된다. (어느 순간 갑자기 터져서 갑자기 도망간다는 뜻임)


무엇을 회피하고 싶었길래 주말 내내 잠을 그렇게 잤는지 모르겠지만 출근 전에 뭐 하나라도 새로운 자극을 넣고 가야 할 것 같아서 한주 내내 래핑을 뜯지도 않았던 잡지를 베개 위로 올렸다.



이번 <어라운드>는 정말 라인업이 미쳤는데, 출근해야 하고 이미 시간은 새벽 두시니까 월요일 출근자의 마음으로 인터뷰 하나를 골라 먼저 읽었다. (원래는 뭐든 순서대로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의 큰 결심이었음)


저는 성격도 그렇지만 감정이 글쓰기의 핵심 동인이라고 생각해요. [...] 그렇다고 감정을 너무 날것 그대로 담는 건 조심해야 해요. 물론 저도 그렇게 글 쓸 때가 있는데요. 그러고 나면 쳐내고 깎는 과정을 꼭 거쳐요. 감정이 움직여서 쓰는 일이 잦아질수록 '글은 드라이하게 쓰자.'고 마음먹게 되더라고요._손현(토스 콘텐츠 매니저), <어라운드 77호, 기록생활자>에서


나 이거 읽을 때는 출근하려면 다음 주의 나를 위해서 뭐든 새로운 거 하나 보고 자야 돼! 의 마음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냥 이번 주 브런치에 글 쓰려는 사람의 고민이 그대로 보이는 밑줄이었다.


21/05/11


하루를 흥청망청 쓰다가 꼭 자려고 하면 시간이 아깝다. 자기 전에 인터뷰를 하나 더 읽었다. 이번에도 읽고 싶은 인터뷰부터 골랐다.


그냥 지나가 버렸을 법한 일들이 기록으로 남으니까 좋더라고요. 대단한 이벤트를 그리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행복을 곱씹으며 그리고 있거든요. [...] 이런 작은 순간들은 기록해 놓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리잖아요. 우리 머릿속엔 큰 이슈만 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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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나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대목을 읽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밤마다 저에게 편지를 썼어요. [...] 그 시절을 겪고 난 뒤에는 드디어 저답게 살기 시작했는데요.
_롤리(오롤리데이 대표), <어라운드 77호, 기록생활자>에서


오롤리데이 유튜브 재밌어서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으면서 종종 본다. 주변에서 오롤리데이 제품을 좋다고 하면서 추천해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롤리 대표의 인터뷰나 영상들을 보면서 브랜드에 더 관심이 가고 좋아졌다.



안 그래도 요즘 서간문의 텍스트를 많이 접하게 된다. 내게 거는 말들에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움직이는 마음이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게 편지의 힘인 걸까. 우리가 편지에 기대하는 건 뭘까. 그냥 내가 요즘 뉴스레터를 많이 구독하기 때문에 레터라는 형태에 익숙해져서 더 잘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우리가 거리두기 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기꺼이 시차를 두고 도착하는 글에 반응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드는데 또 귀찮으니까 여기서 멈추고 더 생각 안 해보는 중이다.


그래도 꽤 전에는 친구들이랑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전화로 문자로 카톡으로 이야기하던 우리가 가끔 편지를 썼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이제야 궁금하다.


21/05/12


아웃풋의 날. 수면 사이클은 엉망이 됐고. 저녁에 자서 자정에 일어났고 그대로 잠이 안 와서 별수 없이 이른 출근을 했다. 그런 새벽에 책장에 꽂혀있던 책 하나를 부적처럼 꺼내서 책상 위로 옮겼다.


본문을 펼쳐 읽은 게 아니라 책 뒤 표지의 글을 읽었고, 책을 보는 게 더 예쁘고 먹먹하니까 사진으로 올린다.



이 책을 읽고 오래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대학생이었고 마구잡이로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에서 봤던 것 같은데.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그 당시에 개봉했기 때문에 봤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 나왔던 음악과 둘의 수집품으로 가득한 집을 배경으로 인터뷰하던 피에르 베르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덮었더니 그 다큐멘터리가 다시 보고 싶어서 VOD를 검색했다. 그 어디에도 없더라. 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DVD를 샀다. 다행스럽게도 집 가까운 지점에 재고가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근처에 살았던 전 주인에게 고마웠다.



21/05/13


이번 주에 읽고 밑줄 쳤던 것들을 보면서 공통된 하나가 보여서 너무 웃겼다. 파편 같은 매일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나는 나를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는 것 같음. 셀프 방목형 인간. 남한테도 노관심이고 나한테도 노관심이고 내 관심은 어디에 가 있나요.


매일 읽는 척 시작한 포맷인데 오늘 딱히 읽은 게 생각이 안 나네. 오늘은 그래도 당일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옆에 쌓인 책 하나를 꺼내서 읽을 수도 있다. 사실은 문장을 찾을 겸 한 권을 펼쳤다가 접었다.


좋은 오디오 콘텐츠들이 점점 많아진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전날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반갑다. (요즘 라디오 자주 듣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다 팟캐스트로 다시 듣기 해서 새로운 노래 하나도 모름)

 


오늘 출근길에는 책읽아웃 정문정 작가편을 들었다. 오디오북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오디오 콘텐츠는 내가 기억해두고 싶었던 부분을 체크해둘 수가 없어서 아쉽다. <비커밍> 들으면서는 재생 바를 캡처해두기도 했는데 들으면서 옮겨 적어둔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더라. 그래서 못하고 그냥 아 좋은 말들이 있었지. 이 상태로 지나감. 하지만 오디오북 아니었다면 나는 그 이야기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야.


그래서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말들은 이런 것이다. 대구에서 후려치는 말들에 둘러 싸여 살았던 정문정 작가가 서울에 오고 나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처음 듣기 시작했고, 진짜로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엉망진창으로 기억하고 있을 확률 200%이므로... 5월 12일 자 책읽아웃을 들으세요)


맞아 그거 되게 충격적이지라고 공감하면서 들었다. 많이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될 때가 있다. 이런 내가 너무 번거롭고 그렇지만 어쩌겠어. 마음가짐 세팅부터 해줘야 뭘 할 수 있는 사람인 걸.


21/05/14


또 누워서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계획보다 늦게 잠들고 애매한 시간에 깬 덕분에 아침인데도 약간 뜬 시간이 생겼다. 지난밤 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펼쳤던 책의 사진을 찍었다.



새벽에 표시해둔 페이지들 중에서 아침에 다시 읽다가 멈춘 밑줄은 이것이다.


[...] 진짜 시와를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꿈도 들여다 보는 이야기가,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누구든 안아주고 이해해주는 광대한 '시와'라는 이름 안에서 정작 자신은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 이렇게 버거웠다니._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사실 문장은 아침에 골라놓고 옮겨 적는 지금은 퇴근한 저녁이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돌아와 다시 보니 지난밤 내가 했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그 고민이 아침까지 어떻게 남아있었는지 가늠해보게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 자신을 버거워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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