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모로코행 비행기를 찾아볼 때는 주로 메인 도시인 카사블랑카로 인, 아웃하는 루트만 검색되었다. 일찌감치 예약을 해 놓고 여행 준비를 위해 가이드북도 사고 인터넷 검색도 하다 보니 동선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발일이 임박해서 다른 루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왕복, 리스본에서 카사블랑카 인, 탕헤르 아웃하는 티켓을 구매하였다. 사실 탕헤르는 모로코의 다른 도시에 비해 여행자에게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다. 그저 유럽과의 연결을 위한 항구도시 정도의 느낌이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을 바꾸기까지 하며 그곳에 가려고 한 이유는 내게는 그곳이 꽤 매력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탕헤르, 탠지어, 땅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도시는 우선 위치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아프리카의 서쪽 끝에 위치해서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을 마주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깝게. 국가나 대륙의 경계는 지리적, 정치적으로 특이한 위치에 있는 우리에겐 언제나 이국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거기에 아프리카와 유럽이라니... 거기에 탕헤르는 '파울루 코엘류'의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배경이 되었고, 여행계의 시조새(?)라고도 할만한 1300년대의 대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이며 그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심지어 탕헤르 공항 이름은 그의 이름을 빌려 '이븐 바투타 국제공항'이다.
사실 이런 이유보다 나를 탕헤르로 이끈 가장 큰 이유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본 시리즈' 중 '본 얼티메이텀'의 촬영지이기 때문이었다. 첩보 액션물의 새로운 시대를 연 '본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편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그 후에 계획에 없던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촬영지를 찾아가 보려고 여행 출발 전 영화의 탕헤르 부분을 몇 번을 돌려 본 덕분에 도착하고 보니 안 그래도 긴장감 도는 모로코인들의 외모와 건물들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부작용이 생기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모로코 일정 중 가장 많은 날을 탕헤르에서 머물렀다. 그곳을 기점으로 설명하기 힘든 로컬 버스를 타고 블루시티로 유명한 쉐프샤우엔과 아실라까지 여행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연금술사'와 '본 얼티메이텀'의 흔적을 찾아 탕헤르의 골목을 헤맸다. 반쯤은 호기심을 품고 반쯤은 겁을 잔뜩 품고서...
P.S : 요즘 방영 중인 이승기, 수지가 주연한 '배가본드'라는 드라마를 보니 초반에 모로코 탕헤르가 배경이다. 이승기가 탕헤르의 메디나에서 건물 옥상을 뛰어다니며 액션을 하는 걸 보니 '본 얼티메이텀'과의 비교보다는 이제 세계가 참 좁아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