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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롱올립 Apr 27. 2021

안경의 기록

  안경을 쓰는 것이 창피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안경은 늘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안경이 나에게 부여하는 어떤 역할과 이미지는 무거웠다. 두꺼운 렌즈 뒤로 불안하게 움직이며 대상을 쫓는 눈동자, 한껏 힘이 들어간 미간, 경계를 벗어난 곳에서부터 얼굴에 드리우는 얕은 안경태의 그림자,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연신 끌어올리는 내 손가락의 움직임, 뿌옇게 먼지가 앉은 안경알을 닦아내기 위해 호호 입김을 불어넣으며 주머니에서 슬쩍 꺼내 든 안경닦이 수건의 구깃한 잔주름, 점점 앞으로 돌출되는 눈 모양, 매섭게 변해가는 날카로운 눈매... 그런 형태와 상황들은 불편하고 어려웠다. 거울 속을 보면 생긴 모습 그대로 자유롭고 예쁜 내 얼굴이 있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내가 예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안경을 쓴다는 것,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나를 속박하고 제한하고 병들게 하는 이 물건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미워했다. 좀 더 잘 어울리는 안경을 찾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 검은 뿔테, 호피무늬 뿔테, 동그랗거나 타원형이거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의 안경알을 썼다. 그 중에 최악은 안경알에 옅은 갈색을 입힌 것이었다. 선글라스처럼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자 한 시도였는데 결과적으로 한참을 잘못된 선택이었다. 친구들은 그 갈색 안경알의 낯선 이미지를 놀림감으로 삼았다. 그저 안경 쓴 말수적은 여자애로 눈에 띄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이 놈의 갈색 안경은 상황을 많이 바꿔놓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가벼운 농담거리가 되었다.


'쟤 안경좀 봐, 왜 알이 갈색이야? 선글라스야?'

'눈 나쁘다던데?'

'근데 열라 웃기다. 저게 뭐냐?'

'신경꺼. 알게 뭐야.'

그 무렵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맹인들이 쓴 검정색 선글라스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선글라스는 빛을 받아 번쩍거렸고 어린 나는 그 검정색의 번쩍거림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무서웠다. 길을 걷다가 검정색 선글라스를 발견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무거운 숨을 가슴으로 삼켰다. 그럴때마다 나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던 어설픈 말들, 현실에 대한 체념과 받아들임, 타인의 고통을 보며 위안을 삼는 나의 이기적인 본능...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바스락거렸다.  대학시절에 콘텍트렌즈를 껴 보려고 몇 번 시도를 했다. 설마 한통 다 실패하겠나 싶어 배짱 두둑하게 수십개의 렌즈를 안경의 도수대로 구매했다. 안경 하나 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비싸지만 예뻐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큰 맘먹고 돈 좀 썼다. 판매원이랑 렌즈쓰는 법을 여러번 연습하고 호기롭게 집에 온 지 딱 이틀만에, 남은 렌즈들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 눈을 부릅뜨고 어찌어찌하여 렌즈를 착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뻑뻑해지고 나중에는 빨갛게 눈가가 충혈되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고 자꾸만 손으로 눈을 비벼대디 불편감은 더 심해졌다.  눈을 부릅 뜬 상태에서 소독액을 도포하는 것도 어려웠다. 눈을 크게 치켜 뜬 상태에서 액체방울 톡, 떨어뜨려야 하는데 자꾸만 반사적으로 눈이 감겼다. 주인을 잘못 만나 죄없는 내 소중한 몸이 혹사당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렌즈를 착용한 내 모습은 너무 어색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걸쳐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처음 하이힐을 신고 빼뚤빼뚤 위태롭게 걸었던 대학 새내기 시절의 한 때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모름지기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이 따로 있는데, 그때는 오기로 깡으로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더랬다. 누구는 쌍커플 수술을 하고 누구는 눈매교정술을 하고, 라식/라섹 수술을 해서  안경을 벗으니까 몰라보게 예뻐졌다라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처음엔 동요하던 나도 시간이 지나니 남들 살아가는 방식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편하고 쉬운 것을 좋아하는 게으른 성격은 한결같았다. 마침내 정착하게 된 안경은 얇은 검정색 테두리의 요리조리 돌려보아도 별다른 특징을 집어내기 힘든 밋밋한 생김새다. 안경알은 최대한 얇게 압축하는 것을 선호한다. 안경알이 두꺼울수록 얼굴에 왜곡이 심해서 이미지가 자연스럽지 않다. 마침내 찾은 평범한 안경, 이 안경을 쓰고서야 비로소 내 얼굴 요소요소의 미학이 드러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딱 그런 마음으로 눈, 코, 입, 이마, 귀, 턱선, 볼, 광대를 바라본다. 잘 어울린다. 생겨난 모습대로 서로 조화롭다. 오랫동안 안경을 써 온 탓에 어릴 적 모습과는 군데군데 균형과 비율이 달라지고 틀어지긴 했다. 이 모습도 마음에 든다. 제일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맹하고  순진해 보였다가, 찬찬히 뜯어보면 세상 재미없고 무자비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 모습. 안경와 함께 살아온 내 얼굴에 남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 자국들. 이게 바로 나다. 어떤 사물 하나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규정할 수 있는가. 그저 물건 하나가 그런 막강한 힘을 거머쥘 수 있는가. 인간 존재론적으로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 영혼의 자유로움이 작은 사물에 묶이고 재규정되고 어느 한 자리에 닻을 내리게 되는 꼴이 당황스럽지 않나. 그렇다. 당황스럽다. 내 얼굴에, 몸에, 인생에 안경의 기록이 아로새겨지고 나와 함께 이 녀석의 이야기도 계속 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경계하는 것 한 가지는 이 안경의 기록이 내 인생의 기록을 집어삼키는 것이다. 나와 안경의 기록이 함께 손잡고 가는 것은 좋지만, 결코 나는 이 녀석에게 전복되지 않겠다. 책상위에 놓인 안경을 집어 쓰기 전에 다짐한다. 이 안경, 내가 내 손으로 쓰는 거다. 누가 내게 강요한 적 없는 물건, 내가 선택한 모양대로 맞춰진 물건, 이 물건의 주인은 나다. 그래, 안경놈아, 너의 주인은 나다. 그러니까 너의 기록도 전부 오롯이 나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 안경의 기록은 애초에 없었던 말이 되어야 한다. 대신이 내가 살아온,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들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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