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롱올립 Oct 13. 2021

저시력 체험하기 2 - 오래된 피아노의 기억


엄마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룰  아는 교양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악기를 접해볼 기회를 주셨다. 제일 처음 배운 악기는 피아노와 장구였다. 초등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사물놀이반을 신청해서 장구를 배웠고 피아노는 일주일에  세번 따로 시간을 내어 학원에 다녔다.   적성에  맞는 것은 장구였다. 쿵기덕 쿵기덕 신나는 장단에 맞춰 장구를 두드리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같았다. 특히 박자가 점점 빨라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클라이막스를 알리는 꽹가리 소리가 선두주자로 치고 나오는 순간을 좋아했다. 예나 지금이나 박치에 음치에 몸치여서 음악적인 인간이 되기는 일찍이 글렀다. 그래도 사물놀이에는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귀를 압도하는 악기들의 쿵쾅거림 속에 있노라면 내가  흥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피아노보다 사물놀이를  좋아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내가 배운 피아노는 억압적이었다. 악보를 읽고 해석하고 감정을 불어 넣어 연주를 하려면 우선 뭔가가 보여야 하는데 이거  악보에 적힌 음계가 너무 작다. 내가 주로 치던 곡들은 아주 쉽고 기본적인 연습용 곡들이어서 음표가 큼지막하고 곡의 흐름이 단순했다. 하지만 문제는 피아노를 치는 자세였다. 선생님은 건반을 두드리기 전에 좋은 자세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피아노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건반위에 가지런히 손을 올린 다음 발은 페달을 편안하게 누를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고 나면 자연스레 악보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책을 보듯이 악보를 눈앞에 가져다 놓고 들여다  수는 없었다. 거북 목의 피아니스트는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자고로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아름다움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고고하고 유연한  마리의 학처럼 건반 위를 유영하는 모습이다.  안보이는 악보를 보겠다고 끙끙거리며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오만상 인상을 찌푸린 사람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학원에 가는 것이 힘들고 지겨웠던 나는 매일 엄마를 졸라 학원을 그만둘 핑계를 댔다. 눈이 나빠서 피아노 치는게 힘들다는   입장에선 핑계가 아니라 '팩트'였지만 엄마한테는  모든 말이 한낱 어린아이 투정으로 들렸다. 엄마는 내가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맞는 해결책을 찾아주셨다. 악보 보기의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한 엄마의 묘안은 '확대 복사'였다. 엄마는 내가 연습하는 모든 곡의 악보를  장씩 확대 복사해서 나만의 커다란  악보를 만들어 주셨다. 확대 복사된 커다란 악보 뒤에는 마분지를 덧대어 악보를 넘길 때에도 종이가 펄럭거릴 일이 없었다. 나는 주로 1.5배에서 2 크기로 확대를 했는데 이건 곡의 난이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쉬운  악보가 짧고 단순해서 2 크기로 해도   장이면 되었다. 어려운 곡은 악보에 적힌 것도 많고 복잡해서 두배 크기로 확대 복사를 해버리면 원래   장이던 악보가  장을 넘어가기도 했다. 두툼해진 마분지 악보를 들고 학원에 가면 항상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누가 볼까 창피해서 몸집만한 악보를 품에  쥐고 몸통으로 최대한 가리려 노력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친구들은 내가 숨기는 것이 신기한 보물이라도 되는  마분지 악보에   관심을 가졌다.


 무렵 매일 악몽을 꿨다. 속옷차림으로 학원을 가서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거나 신고  신발이 신발장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려서 맨발로 집에 돌아오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애타게 찾아 헤매던  잃어버린 신발과 옷가지들을 합치면 커다란 언덕 하나가 생길 것이다. 대체  속옷만 입고 학원을 가려고 집을 나서는지 이해할수 없어서 꿈을 깨고  후에 '다음 번엔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학원가는 꿈을  거야' 라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피아노 정글에서 유일무이한 타잔이 되어 있었다. 영화속에 타잔은 행복했는데 나는 너무 불안하고 공포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었던  같다. 꿈속에서 나는 걸칠  하나 없이  몸으로 피아노앞에 앉았다.  돌릴 곳은 커다란 마분지 악보 뿐이어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마분지 악보를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어서  피아노 정글을 탈출할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집에  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벗어 던져 쌓아 올린 신발무덤에서  신발을 한참동안 찾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아예 출입문 바닥에 질퍽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구들의 신발은  것과 비슷한 것이 많아서 하나하나 들추어 보아도 헛갈릴 때가 많았다. 겨우  짝을 찾고 나면 나머지  짝을 찾는데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꿈속에서 나는 신발 찾기를 도중에 포기한 경우도  많았던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고 얼핏 보아 비슷하게 생긴 물건도 차이를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어른이  지금도 나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찾는데 정상인에 비해 시간이  걸린다. 신발장에 놓인 신발들을 하나하나씩들여야 보고  것을 구분하려면 눈과 뇌의 협업이 필요한데 시력이 좋지 못한 나한테는 간단한 신발 찾기도 생활 속에 도사리는 작은 미션이다. 지금도 간혹 식당에서  것과 다른 이의 신발을 헛갈릴 때가 있지만 30년을 넘게 반복되는 상황이라 조금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게  것이다.


어른이  나는 피아노를   모른다. 엄마의 등살에  이겨 꾸역꾸역 학원을 다니면서 '체르니 100'까지는 진도를 뺐던  같은데 지금은 '떴다 떴다 비행기'  손으로   치지 못하는 정도의 실력으로 퇴보했다. 비싼 학원비를 들여    노력한 결과로 지금의 비루하고 무지막지하게 대책없는 피아노 무식자가 되었다는것을 엄마가 알게 되면 뭐라고 하실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피아노를   적이 없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셨겠지만 그래도 이정도까지 형편없을 거라곤 생각 못하시겠지. 지금  상태는 피아노 악보의 뒷줄과 아래줄, 그러니까 왼손과 오른손의 악보를 동시에 읽는 것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각기 음계도 다르고 박자도 다른데두 손을 함께 연주하여 어울리는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상상조차   없는 일이다. 어떻게  줄의 악보를 동시에 읽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건 마치 책을 읽을   줄을 함께 읽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해내는 분들이 피아노를 친다. 나로선 범접할  없는 경이로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 놓았는지   같다. 아마도 내가 그깟 어려움쯤은 악으로 깡으로 이겨내고  걸음씩  힘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바라셨을 것이다. 돌부리 앞에서 넘어져 울더라도 스스로 인생의 작은 난관들을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셨겠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마음을 너무도    같다.  자식이 힘들어하는 것은 보기 싫지만 그보다  싫은 것은 녀석이 인생의 크고 작은 시련앞에 너무 쉽게 무릎 꿇는 일이다. 스스로 젖병을  줄도 모르던  소중한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하고 혼자 힘으로 앉고 일어서고 걷기를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의 과정이 있었던가. 흘리는 것이 절반 이상이지만 어린 녀석의 손에 손가락을 쥐어 주고 스스로 먹도록 가르치는 , 입은 옷이 흥건히  젖어버리지만 스스로 물을 마실  있게 컵을 건네주는 , 부딪히고  것이 뻔해 보이지만   곳곳을 탐색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일도 엄마의 마음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에는 싫어도  해야하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얼어 죽을 자존심을 지키는  보다  중하다는  깨닫게 하는 것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너무  안다. 그래서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엄마는 내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지 않았지만 엄마의 모든 판단과 결정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이전 03화 저시력 체험하기 1 - 버스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