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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Mar 01. 2021

퉤! 옛날이었으면 너 죽었어

푸돌이 알약 먹이기, 노견이라 만만할 것 같죠?

'퉤! 이깟 알약 따위!'

푸돌이 입에서 알약이 튀어나왔다. 또 실패다. 몇 번 푸돌이의 입을 거친 알약은 흐물흐물해져서 조금만 더 있으면 내용물까지 쏟아져 나올 지경이었다.

 

"어우.. 푸돌아... 제발...! 엉아 좀 도와줘"

그렇다. 나는 지금 푸돌이에게 약을 먹이고 있다. 어쩜 이렇게 알약을 혀로 잘 밀어내는지, 치아가 없는 곳에 손가락을 넣어 꿀꺽 삼키게끔 깊숙이 넣어도, 푸돌이는 기가 막히게 약을 뱉어낸다. 온갖 혀놀림으로 목구멍에 들어간 약을 빼내는 것이다. 대단한 녀석...

"설마 약 먹이려고?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걸세!"

돌이가 먹는 이 약은 레나진이라는 약으로, 신장 보조제의 일환인데 알약 캡슐 양이다. 이 약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먹어야는데 다른 약에 비해 이 캡슐이 맘에 안 드시는 모양이다. 이 사투를 매일 같이, ‘두 번씩’이나 벌어야 한다...ㅠㅠ


"여보! 얘(푸돌이) 왜 이렇게 고수가 됐어? 옛날에는 그냥 꿀꺽했잖아 ㅠㅠ"

계속된 실패로 풀이 죽은 나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달 전까지만 해도 푸돌이는 이렇게 알약을 입 속에 넣어주면 '켁켁' 헛기침을 몇 번 하고 꿀떡 삼키곤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고수가 된 건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심지어는 몇 개 남지도 않은 이빨로 내 손가락을 '콱' 깨문다. '윽!!' 순간 손가락이 조금 얼얼했지만 노견은 노견.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푸돌이 녀석도 악의적인 목적으로 나를 깨물었다기보다는 본능적인 방어심리였을 것이다. 녀석도 약을 먹지 않겠다는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


'이게 그렇게 맛이 없나...?'

사람 관점의 생각인지 몰라도... 알약을 이렇게 거부하는 푸돌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꿀꺽하면 될 텐데...


'어떡하지...'

방법을 찾지 못해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하던 나는, 고민 끝에 우선 흥분한 푸돌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주는 척! 방심하게 만들 작전이었다.


10분 뒤, 승리자의 기분으로 마음을 놓고 있던 푸돌이를 착! 잡은 나는 이 녀석이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입으로 약을 쑤셔 넣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정말 이번에도 뱉어내면 저 알약은 버려야 한다!’

결의를 다진 두부(필자)의 마지막 필사적인 손짓이었다!


'켁켁켁'

또 뱉는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뱉은 알약이 없다. 오!!! 성공이다. 드디어 성공했다.


약을 주는 모습, 사투를 벌이는 푸돌이와 아내

"아 내가 너무 허접이 되었어..."

아내에게 이 기쁜 성공 소식을 알리며 내가 너무 허접이 된 것 같다며 자조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푸돌이는 이 약을 하루에 두 번이나 매일 같이 먹을 텐데, 당연히 알약을 뱉어내는 스킬이 늘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오랜만에 약을 주는 나는 푸돌이가 보기에 하찮은 허접이었다.


노견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녀석은 엄청나게 레벨업하고 있었다. 고수 푸돌이와 허접 조두부(필자의 별명).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부렸지 푸돌아?


나는 푸(푸돌이와 방구)와 같이 살면서 푸돌이가 짖는 것을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틈만 나면 목청껏 짖는 방구와 달리 푸돌이는 나를 만나고 단 한 번도 짖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푸돌이가 더 점잖고 젠틀맨 같았다.


"푸돌아 짖는 거 까먹었어??"

그런 푸돌이를 보고 치매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아내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얘기한다.


사실 푸돌이는 도련님처럼 애지중지 자라서 성격이 무척 까탈스러웠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고 점잖은데 어떻게 그렇게 사납고 까칠한 녀석이었는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곤히 자고 있는 황푸돌

이런 이야기를 할 적이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알약 주다가 여보 손가락 잘렸어~ 푸돌이 씅질 어우~~"

“헐? 그 정도였어? 그렇게 빡센 녀석이었어?”

갑자기 불현듯 알약을 넣어주다가 내 손가락을 콱 깨문 푸돌이가 생각났다. 18살 노견인데도 콱 깨물면 얼얼한 정도인데.... 만약 힘 있고 혈기왕성한 도련님 푸돌이었다면...? 헐... 덜덜... 내 손가락... 이렇게 알약을 줬으면... 아마 열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았겠지?


나이가 들면 사람 성격이 변하듯, 푸돌이 녀석도 성격이 많이 변한 걸까. 저녁이 되자 순한 양처럼 본인 자리로 돌아와서 곤히 자고 있다. 어쩜 이렇게 곤히 잘 자는지... 예전에 성격 까칠한 씅질 드러운 도련님이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그런 푸돌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는 들리지 않는 녀석 귀에 대고 이렇게 얘기했다

“고마워 푸돌아. 내 손가락 지켜줘서. 너랑 노견일 때 만나서 다행이야..휴..”


이불에 떨어진 알약 캡슐

오늘도 돌이의 캡슐 뱉기 스킬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아내가 준 알약을 먹었다고 착각하게끔 속인 다음에... 한참 뒤 이불속에서 약을 뱉어냈다. 이를 발견한 아내는 어이가 없는 듯 기가 막혀 씩씩거린다.


“이 쫘식이!!!!!!!!”

아내는 떨어진 약을 주워 푸돌이 입으로 다시 넣는다. 고수 푸돌이도 만만치 않지만, 아내는 더 만만치 않다. 고수에게는 고수가 답이다. 푸돌이도 아내에겐 못 당한다.

"어차피 먹을 거면서 뱉긴 왜 뱉어!"

말썽꾸러기 아이가 엄마에게 혼나듯 핀잔 듣는 푸돌이.


그런 둘의 모습이 귀엽다.

그러니깐 푸돌아 제발 약 좀 잘 먹자? 응? 나 같은 허접도 차별하지도 말고? 알았지? 제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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