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녀석은 18살, (텐트 안에 있는 흰색 방구를 가리키며) 저어어기 녀석은 19살이에요"
"뜨억!!!! 그렇게나 많아여?? (다른 텐트를 바라보며) 언니~ 언니네 애기보다 더 나이 많데"
잔디밭에 푸돌이를 산책시키고자 잠깐 텐트 밖을 나갔는데, 어느새 슈퍼 스타가 되어버렸다.
원래 이 구역의 최고참은 16살 말티즈라는데, 푸구(푸돌이와 방구)가 등장하자 최고령 어르신이 바뀌었다.
아니 왜 따뜻한 텐트 놔두고 이렇게 아내 옆에 있는 거야?
어르신 등장에 캠핑장이 들썩인다.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게 잘 키웠냐고, 전혀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간다. 아내가 그만큼 녀석들을 잘 케어해줘서 그렇다는 생각에 괜히 나도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푸돌이가 걸어가자 다른 멍뭉이들이 길을 비켜준다. 역시 어르신 파워.
'슈퍼 어르신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아~!!'
이번 주말, 아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푸구와 캠핑 가는 것을 실천했다. 푸구가 너무 나이가 많다 보니 힘들진 않을는지 걱정이 되어 망설였는데, 만반의 준비를 갖춰 기어이 찾아온 캠핑장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심지어는 불안함에 자주 짖던 방구조차 훨씬 덜 짖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방구 어르신이 텐트 생활에 꽤 만족하신 모양이었다.
사실 방구가 우렁차게 짖어도 전혀 티가 나지않았는데, 워낙 큰 목소리로 짖는 다른 강아지들이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19살 방구의 목소리는 그냥 힘없는... 녀석만의 외침이었을 뿐이었다. ‘방구야 백날 짖어봐랑~ 아무도 너 짖는지 모른다야~'
반려견 전용 캠핑장이라서 그런지 다들 사람 얘기는 안 하고 어떤 강아지를 (표현도 '강아지'라고 하지 않고 어떤 '아이들'로) 데리고 왔는지 물어보고 안부를 건네주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래서인지 다들 쉽게 친해지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곤히 잠든 방구 녀석, 어르신 텐트 자리가 마음에 드셨나봐요~
초보 개호구인 내 입장에서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했다. 반려견 보호자라는 특징이 이렇게 사람들 간의 거리를 가깝게 하다니, 참 놀라울 뿐이었다.
심지어는 다른 강아지들이 우리 텐트에 자연스럽게 들락날락했는데 아내는 그 아이들을 반겨주고 환대해주었다. 우리 푸구도 다른 데 놀러 가면 특유의 귀여움으로 환영받았을 텐데... 녀석들은 놀러 가질 못하니, 뉴페이스 푸구가 궁금한 여러 멍뭉이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멀리서 바라본 캠핑장. 여러 멍뭉이들이 고개를 비쭉 내밀고 바깥을 살피고 있다.
물론 어떤 녀석은 우리.. 귀하디 귀한 텐트에게... 영역표시를 찔끔하고 가기도 했지만... 괜찮다!.... 아내 말로는 괜찮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내가 괜찮으면 괜찮다. 솔직히 약간 쓰라린 마음도 들긴 했지만... 괜찮았다!! 괜찮아야만 했다...^^
푸구가 잔디밭에 산책을 나올 때면 여기저기서 어린 멍뭉이들이 이 어르신 궁댕이에 코를 킁킁거리며 인사를 한다. 어르신들은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이곳을 즐겨본다. 아내는 다른 강아지들도 이렇게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다른 보호자들과 이야기하며 덕담을 늘어놓는다.
"푸구야! 장수의 기운 좀 팍팍 넣어주렴!!!"
그런데 가만, 어라? 이상하게 푸돌이가 잘 걷는다.
푸돌이는 최근에 허리디스크가 심해져서 걸음걸이가 불편했는데 희한하게 이 곳에 오더니 꽤 잘 걷는다.
캠핑이 좋은듯한 푸돌이. 집에서보다 더 잘잔다.
그 모습에 놀라 하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이야기를 건네 왔다. 이렇게 자연 한가운데의 캠핑장에 있으면 아이들이 활기를 되찾는다고, 아예 한 걸음도 떼지 못하던 아이들도 이곳에 오면 걷는다고. 확실히 아이들도 맑고 깨끗한 공기를 쐬고 풀내음을 맡으면 아팠던 것도 덜한 모양이다. 정말 강아지나 사람이나 똑같다! 요양원이 이래서 요양원이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이곳은 아내만큼이나 반려견을 끔찍이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있었다.
나 같은 늦잠꾸러기는 하나도 없었고 이른 아침 반려견이 눈을 뜨면 보호자도 일어나 산책을 시키며 배변과 놀이를 한다. 심지어는 밥도 먹고 캠핑 철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에나! 부지런한 개호구들을 여기 다 모아놨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캠핑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는 길에 차에서 의젓하게 있던 푸돌이와 방구는 집에 도착하자 허겁지겁 쉬와 응아를 한다.
집에 와서도 생각보다 잘 걷는 푸돌이의 모습. 푸돌이의 디스크가 많이 나아진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방구 어르신은 노곤하신지 이미 잠들었다. 녀석들 나름 캠핑이라고 힘드셨나 보다.
캠핑 또 가자 애들아~
그렇게 우리의 첫 캠핑, 아내의 최애 버킷리스트 하나를 무사히 마치자 나도 아내도 긴장이 풀렸는지 급격히 졸려오기 시작했다. 몸은 피곤하나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 이 녀석들과 좋은 시간,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는 생각에 아내는 찐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보람찬 느낌이었다.
그렇게 침대에 눕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에 스르륵... 다음날 아침까지 기억이 없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랬을지... ㅎㅎ 그래도 또 가봐야겠다.
다음에도 한 번 더 가보자 푸구야!!!! 알았지??? 고마워! 아내의 큰 소망 이뤄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