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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Apr 04. 2021

'추억' 예찬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는 우리 삶의 고유한 기억, 찬란한 별들

정말 오랜만에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주함과 설렘이 아침 바람과 함께 제 마음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여러 풍경을 보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과거의 어느 장면으로 돌아간 것마냥 추억에 잠겼습니다.


결혼식이 있어 내려가는 길, 기회와 시간이 맞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몇 년 만에 얼굴을 보는 건지, 한 때 거의 매일 같이 얼굴을 맞대어서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얼굴 한 번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만큼 각자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렇게 끈을 놓지 않고 연을 이어간다는 것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긴 여행 끝에 만난 친구의 모습은 여전히 멋졌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속 깊고 배려 깊은 모습도 여전했구요.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나 봅니다. 세월의 공백은 컸지만 몇 마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간극을 금세 메워버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그리고 과거에 함께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에 다시 잠겼습니다.


나의 어리숙한 20대 중반을 같이 함께해준 친구. 너무 미숙해서 아직 채 여물지도 않았던 풋풋한 어린 청춘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나눴던, 그리고 꽃 피웠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이제는 나이가 쪼끔 들어 둘 다 조금 더 성숙했지만 여전히 서투른 30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 곳에서 또 다른 추억 하나를 쌓아갑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쉬울 적이 드문데, 오늘만큼은 서울로 향하는 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친했던 이와 오랜만에 만나는 건 때로 두렵기도 합니다. 만나지 못했던 그 간의 공백들이, 아주 오래된 그 빈 시간들이 더 이상 메워지지 않을까 봐. 내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그런 추억들이 과거의 유물들로만 머물러있을까 봐. 그래서 다시는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는 사이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물론 그것 또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긴 과정 중 하나겠죠. 누군가는 곁에, 아니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닿아있는 그런 인연이 되는 반면 어떤 이와의 추억은 한때의 기억으로, 순간의 찐했던 이전의 우정으로만 남겨두어야 하는... 거기까지가 끝이라는 사실에 조금 서글프기도 합니다. 물론 그게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섭리겠지만 말입니다.


턱을 괴고 창문 밖을 바라보니 밤 기차의 불빛이 어른거립니다. 지나가며 보이는 흐릿한 마을 정취에 이런저런 생각의 흐름이 밀려옵니다.


나를 알았던 이들, 나와 우정을 쌓았던 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내가 그들을 먼 기억 속 추억의 조각으로 기억하듯 그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줄까요. 어쩌면 이제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그들. 그들은 잘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인생은 추억으로 먹고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보면 저도 인생을 꽤 나름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추억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끔 꺼내어 볼 수 있는 좋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죠.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추억이라는 별들이 더 풍성해지는 만남에 마음이 개운합니다. 기분 좋은 노곤함이 찾아와 눈을 조금 감자 스르륵 고개가 떨어지고 잠에 빠져듭니다.


며칠 뒤면 다시 또 현실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우리 인생에 이 '추억'이라는 선물이 있어 참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의 삶을 잘 견뎌내다 보면 또 새로운 별들이 우리 삶 속 깊이 자리 잡겠죠? 아직 서투르지만 짧게 살아본 '인생'이라는 것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생이 풍성해지는 삶을 계속 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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