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머리가 살짝 까진 아저씨는 뒤편에 손수레를 끌며 들어온다. 손수레 안에는 이사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네모 박스가 담겨있고, 그 박스 안에는 무얼 그리 많이 담았는지 비닐로 포장된 무언가가 가득하다.
너저분하게 보이는 그 박스에서 한 뭉탱이를 집어 든 아저씨는 주위를 스윽 한번 둘러보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얘기를 꺼낸다.
"자~ 날 더우시죠! 제가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 행상인. 그는 싸구려 팔토시를 들고 연신 소리친다.
'저걸 누가 사, 쓸모도 없어 보이는 데, 다이소에 가면 더 좋은 거 팔겠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시선을 거두려 할 때쯤, 저쪽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든다.
'어라? 이걸 산다고?'
"아저씨, 2개 주세요"
등산을 하고 온 모양인지 챙이 기다란 모자를 쓰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은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냈고 행상인은 천 원을 거슬러 준다.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손을 들더니 아저씨를 부른다.
"아저씨, 여기도요"
이 칸에 구매 욕구가 전이된 건지 몇 차례나 더 팔린다.
"엠보싱은 손바닥이 보이게끔 쓰세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엠보싱' 따위는 없는 팔토시인데...
사실인 것 마냥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아저씨나 엠보싱이 있다고 믿는 여사님이나 신기할 뿐
방금까지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던 나의 냉철한 분석이 허무하게 무너진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멈추자. 아저씨는 한 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듯 황급히 다음 칸으로 넘어간다.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 그는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괜찮은 팔토시를 건졌다고 생각한 중년 등산객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퍼졌다.
지하철이 한 정거장에서 다른 정거장까지 지나쳐가는 아주 찰나의 일상, 그 순간이 슬로 모션이 되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아, 내 세상에는 기막힌 일이 저들에게는 아주 '당연한,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다'라는 묵직한 깨달음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스쳐 지나가는 무료한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몰랐던 것을 새삼 알게 될 때도 있고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것뿐이랴, 그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적도 있다.
방금 보았던 지하철 행상인만 봐도 그랬다. 그들에게서 물품을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구매자들이 그렇게 흡족해할 줄은 전혀 몰랐다. 신선한 충격. 내 세계관과 가치관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보니 지하철 행상인 분들은 늘 자신감이 넘친다.
하긴... 못해도 10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장사를, 아니 짧은 연설에 가까운 말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지금도 앞에 나가서 무얼 발표하라면 쭈뼛쭈뼛 대는 게 나의 모습인데, 심지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재미있는 상상이 생각났다. 저 행상인 분들에게 최대 적수는 누굴까?
연신 '행상인은 내리라'라고 말하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아니라
승객들의 눈과 귀를 반강제적으로 집중시키게 하는 이상하고 괴상한 사이비 종교 / 철학 전파자들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어떠한 특정 캐릭터로 설정해보면 어떨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일상 속의 이야기들을 모아 캐릭터로 만들고 그 성격에 작가의 마음을 투영해, 내가 그리고 싶은 세계와 사회를 그려나가는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이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좋아해 책을 읽고, 책을 쓰고자 하는 나는
이야기의 영감이 어디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우리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가 늘 우리 곁에 원석처럼 존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